수림문학상

지영

제9회 수상작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 지영

  • 내용
    저자 지영

    지영 1984년 광주光州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이화여자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역사교육과 문학을 공부했다.
    '5.18 신인문학상(소설)'을 수상했다.

    심사평

    코로나19가 지속되고 있고, 인간의 단절은 더욱 심각하게 진행된다. 혹자는 대부분의 활동이 비대면으로 이어지는 이런 현상은 앞당긴 미래의 모습이라고도 한다. 이 시기 인간의 다양한 삶의 모습, 거기서 파생되는 다양한 관계를 이야기하는 소설이야말로 그 역할이 커졌다고 볼 수 있겠다. 원고지 800매 이상의 장편소설 쓰기의 지난한 노력을 잘 알기에 심사는 그 어느 심사보다 많은 공력이 들어갔다. 놀라운 신인의 탄생을 바라는 마음이 공력을 더했을 것이다.

    많은 응모작들이 각기 개성을 드러내며 이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어 반가웠다. 한가지,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의 영상을 잠깐만 봐도, 혹은 대사처리의 방식만 봐도 잘 만들어진 작품인지 아닌지 안다. 마찬가지로 소설에도 명백한 소설의 문장이 있다. 장편소설은 세계를 다양한 방법으로 확장해 보여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때 이 확장의 방법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좋은 소설인지 아닌지는 '어떻게'에서 판가름 나는 경우가 많다. 이 '어떻게'가 소설의 문장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의 소설쓰기는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에 맞춰져 있는데 아직도 무작정 하고자하는 이야기를 써나가는 '무엇을'에 방점이 찍힌 소설들이 많았다.

    한 달 간의 예심을 통해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하드보일드 뽀이』, 『기울어진 운동장』, 『아디오스 곰별』, 『한 칸』, 『인생 마치 비트코인』,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여섯 편이었다. 심사위원들은 여섯 편에 대한 각각의 소감을 나누었고, 한두 작품을 추천했다.

    『하드보일드 뽀이』는 소설 전체를 장악하며 힘 있는 문장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대단했다. 다만 너무 하드보일드하다고 할까, 적잖이 부담이 되는 소설이었다. 『기울어진 운동장』은 백화점과 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소상공인 간의 갑을 관계에서 비롯되는 삶의 좌절을 잘 드러내고 있으나, 독자의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 서사와 보편적인 문장이 아쉬웠다. 『아디오스 곰별』은 사랑과 이별,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을 담은 소설로 느슨한 서술이 아쉬웠다. 『한 칸』은 경험에서 우러나는 작품의 진정성은 있으나 기존의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익숙함이 있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논의한 작품은 『인생 마치 비트코인』과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였다. 『인생 마치 비트코인』은 잘 읽히는 작품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젊은 아파트 관리인의 차분한 이야기 전개도 흥미로웠다. 다만 이 세상을 다 아는 듯한 단정적인 문장, 403호와의 관계를 일기를 들여다보는 형식으로 쉽게 설정한 점, 결말의 작위성 등이 아쉬움으로 언급되었다.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는 모든 심사위원이 공히 추천한 작품이었다. 테러 현장에서 사고를 당한 뒤 깨어난 인물들이 모국어를 잃고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는 언어를 모국어처럼 자연스럽게 말하게 된다는 설정이 관심을 끌었다. 사고 뒤 전혀 다른 환경에 놓인다는 설정은 낯설지 않지만 그것이 '말'이라는 점이 신선했고, 언어와 세계와의 관계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힘이 있었다. 모국어를 잃고 전혀 다른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한다는 것은 몸에 다른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몸 자체가 바뀐 것과 같아, 결국 이 세계에서 고립되고, 먼지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내용은 언어에 대한 놀라운 천착이었다. 또한, 1000매 가까이 되는 작품 전체를 '수키 증후군'과 관련된 인터뷰와 기사만으로 채운 점도 놀라웠다. 인터뷰와 기사 사이에는 어떻게 기사를 접하게 됐는지, 혹은 인터뷰를 하게 됐는지 보조 설명도 없이 툭툭 문단이 나뉘고 서술되지만 그것이 허술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의 행이나 연처럼 압축된 힘을 가졌다. 우리의 말을 붙든 낯선 소재, 과감한 생략과 단단한 문장은 다른 소설과 확실한 차별을 보이며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다만, 신체가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는 설정을 할 수밖에 없는 점은 이해가 가지만 설득력이 조금 약했고, 기본 서사가 기사나 인터뷰만으로 채워지고, 행간의 생략이 심하다보니 일반 독자의 가독력을 담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일부 있었다.

    그럼에도 심사위원들은 독특한 설정과 전개방식으로 새로운 한 세계를 펼쳐 보인 신인의 패기를 높이 샀다. 이 신인은 우리에게 흔히 말하는 소설의 재미를 이제는 전혀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할 때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저 그렇게 잘 쓴 소설이 아닌, 전혀 다른 소설의 문법으로 한국문단에 새로운 파장을 일으키길 기대한다.

    서평

    한국문학은 어디까지 왔을까. 이것이 한국문학일까. 의문을 거듭하면서 나타난 새로운 소설이 경이롭다. 이 소설로서 새로운 한국인의 탄생을 본다. 많은 의문 속에 우리 문학이 새로운 모 습을 하고 나타난다. 자유롭고 풍요롭다. 일찍이 못 보았던 문법이 우리를 이끌어 간다. 문학 은 이런 것이었다. 작가는 새롭게 선언한다. 그럼으로써 한국문학은 느낌표의 새 길을 열었다.

    벽돌을 하나씩 확인하며 쌓은 정교하고 단단한 건축물을 보는 듯하다. 그 벽돌 가운데는 특별히 빛나는 것도 있으며 어떤 것이든 제 역할을 다하여 놀라운 이야기를 단단히 지탱한다. 소설과 소설 아닌 세상이 유비되고 확장되어 서로를 감싸안는 듯한 모습이 이채롭다.

    느닷없는 모국어의 교체, 신체의 먼지화가 진행되는 '수키 증후군'이라는 놀랍고도 충격적인 세계적 유행병의 이야기를 홀리듯 따라가다 보면, 테러와 분쟁, 폭력과 혐오의 사건들이 그칠 줄 모르는 오늘의 세상이 정교한 홀로그램처럼 우리의 눈앞에 떠오른다. 그러나 소설의 더 깊은 이야기는 언제든 세상의 일부로 함께 존재하는 우리 모두의 운명을 느끼고 생각하는 자리에서 심해의 풍경처럼 울려 온다. 사라진 자와 남겨진 자를 잇고 함께 기억하는 상상력의 절실함이야말로 이 지적이고 창의적인 소설의 진짜 능력임을 감동적으로 확인한다.

    알록달록 색색의 헝겊을 잇댄 조각보 같다고 할까.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은 가상의 인터뷰와 방송 출연 영상, 신문 기사, 논문, 주변 인물의 증언 등 이질적인 언어의 파편들을 끌어모아한 편의 소설을 꾸렸다. 이 대담하고도 도전적인 장치의 이면에는 테러와 분쟁의 세계사 속에서 느닷없이 모국어를 잃어버린 언어 난민자들의 정체성 문제가 블랙홀처럼 도사리고 있다. 첫 장편에서부터 이토록 사려 깊고 지적이며 동시대적인 이야기를 펼쳐 보일 수 있었던 이 작가는 누구인가! 심사위원 전원의 합의로 수상자로 선정된 이 작가가 이제 독자들의 마음을 훔칠 차례다. 언어와 세계와의 관계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힘이 만들어 낸 전혀 다른 소설 문법. 이 작품을 소설이라는 범주에 넣을 수 있어 다행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