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저자 김의경
1978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의경은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2014년 한경 청년신춘문예에 자전적 장편소설 '청춘파산'으로 등단했다. 2018년 10월, 첫 번째 소설집인 '쇼룸'(민음사)을 발표했다.
심사평
등장인물들의 교차를 통해 소설 또한 교차하는 구성이 돋보인다. 다섯명의 젊은이들이 보여주는 적나라한 모습은 요즈음 세태가 얼마나 헐벗어 있는지 그대로 나타낸다. 헐벗어 있는 게 아니라면 맹렬히 투쟁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젊음은 소모되면서 새로움을 얻어간다. 이 소설의 진실 획득 과정이기도 하다. 아, 우리도 이렇게 살아왔던가. 잊혔던 순간들을 살려내는 소설의 힘이 우리를 남루함에서 이기게 한다. 또 하나의 새로운 소설에 경하를 보낸다. (윤후명 소설가)
핍밥과 궁핍에 굴하지 않는 청춘의 진군가. 눈물겹고 맵싸하고 아리면서도 감상적이지 않고 섬세한 디테일이 밑받침된 긍정의 에너지가 강렬하다. (성석제 소설가)
『콜센터』는 케이블에 저당 잡힌 청춘의 보고서라고 할 만하다. 화를 내고, 소리치고, 윽박지르는 목소리들에 언제나 다정하고, 신중하고, 예의 바른 목소리로 응대해야 하는 그들은 케이블의 유령에 다름 아니다. 전화선 바깥의 삶은 없는 것일까? 『콜센터』는 이 서늘한 질문 앞에 분연히 ‘노’라고 외친다. 이 소설에 따르면, 젊음은 케이블을 꿈의 엔진으로 바꾸는 마술의 다른 이름이다. 강주리, 우용희, 최시현, 박형조, 하동민 등 내 형제자매, 우리 아들딸의 이름이 남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한없이 애잔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든든하다, 『콜센터』! (신수정 명지대 문예창작과 교수, 문학평론가)
『콜센터』를 읽었을 때 처음에는 무기력에 빠졌다. 하지만 점점 읽어갈수록 분노하게 되고 전의를 불태우게 됐다. 콜센터 상담사 다섯 명이 자신들을 감정 노동의 쓰레기통처럼 느끼게 만든 진상고객을 찾아 부산으로 가는 이 해프닝 같은 여행이 그들에게는 저항일 수도 있다는 것. 이처럼 절망하지 않으려 애쓰는 스물다섯살 청년들은 생활 속 정치의 시작을 알리는 의미 있는 주체가 아닐까. (강영숙 소설가)
『콜센터』는 감정 노동의 시간안에서 이루어지는 뜻밖의 상호 접속과 위로의 순간을 잡아내고, 인물들이 스스로를 다독이고 일으키는 시간에 끝내 도달한다. 그 현재의 미미하지만 단단한 실체는 이 소설의 ‘감정 노동’이 일구어낸 소중한 문학적 진실이라 할 만하다. 막막한 대로 사랑을 시작하는 두 연인의 남루하지만 간절한 첫 잠자리는 잊기 힘든 소설적 감흥의 순간을 빚어낸다. (정흥수 문학평론가)
서평
제6회 수림문학상 수상작
콜센터
갑질공화국 대한민국에 울림을 주는 청춘들의 ‘웃픈’ 이야기!
콜센터에서 일할 때 등단하고, 콜센터 이야기로 수림문학상을 수상한
<청춘 파산>, <쇼룸>의 작가 김의경의 신작
▲‘갑질’ 속에서 신음하면서도 꿈을 위해 치열한 삶을 사는 이 시대 청춘의 초상을 다룬 화제작
꿈이 있지만 냉혹한 현실 앞에 절망하는 이 시대 청춘의 초상을 문학계에서 본격적으로 조명하기 시작한 가운데, 우리 사회의 불편한 소재인 ‘갑질’에 얽힌 20대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 나와 독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바로 김의경 작가가 자신의 체험담을 생생한 디테일로 풀어낸 장편소설 ‘콜센터’다.
갑질은 백화점이나 마트 판매원, 은행 창구 직원, 항공사 승무원, 사회복지사 등 사람을 많이 상대하는 감정노동 직군에서 주로 발생한다. 소설에서는 갑질과 언어폭력이 가장 빈번한 것으로 알려진 콜센터가 주 무대로 등장한다.
사무실에 앉아서 하는 일인 콜센터 상담원은 근무 시간을 조절할 수 있고 남는 시간에 영어공부 등을 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아나운서, 공무원, 대기업 입사, 음식점 창업 등 각기 다른 목표를 가진 주인공인 다섯 명의 스물다섯 살 동갑내기들이 콜센터를 기착지로 삼아 일하면서 꿈을 이어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 시간에도 수십 통씩 전화를 받으면서 온갖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일은 엄청난 감정노동일 수밖에 없다.
소설은 이 시대 청춘의 모습과 정확히 닮아 있는 주인공 다섯 명이 콜센터에서 겪은 갑질 세태를 ‘웃픈’ 형식으로 제대로 포착한다. 또 진상 고객의 허세와 갑질의 상황들이 청춘의 현재와 어우러져 웃음과 헛헛함을 동시에 선사한다.
▲ 대한민국의 을들, 콜센터로 모이다
콜센터는 피자 주문 콜센터를 배경으로 20대 젊은이들의 꿈과 좌절, 우정과 사랑을 그린 소설이다.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으로, 콜센터에 모인 청춘들이 일상에서 접하는 ‘갑질’의 문제도 정면에서 다룬다.
소설 주인공은 스물다섯 살 동갑내기인 주리와 용희, 시현, 형조, 동민 다섯이다.
이들이 콜센터를 선택한 것은 다른 아르바이트에 비해 몸이 덜 힘들기 때문이다. 또 서류 전형에서 번번이 탈락한 지난날과 달리 면접 기회가 쉽게 주어지고 실제 일하기까지 일사천리여서 당장 수입이 필요한 상황에서 이만한 차선책이 없다. 근무 시간을 조절할 수 있고 남는 시간에 목표로 한 취업에 필요한 공부를 할 수도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 취업을 준비하던 주리와 용희는 취업이 될 때까지 잠시만 있기로 하고 콜센터에 들어가 상담원으로 일하게 된다. 이곳에서 방송사 아나운서를 꿈꾸는 시현과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형조, 콜센터 상담원으로 있다 피자 가게 창업을 꿈꾸며 현장 경험을 쌓기 위해 피자 배달원이 된 동민을 만나 친해진다.
콜센터에서는 끊임없이 전화 받고 고객 요구에 응대해야 하는데, 일부 ‘진상’ 고객들로부터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욕설을 포함한 언어폭력이다. 무시와 멸시에 성희롱까지 해대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전화해서 한 상담원을 집중적으로 괴롭히는 사람도 있다.
작가는 콜센터에 전화해 갑질을 하는 사람들이 특별한 권력을 가진 기득권층이 아닌 우리의 평범한 이웃일 수 있는 일반 대중이라는 점을 들춰낸다. 콜센터 안에서 바라본 밖의 모습은 치열한 경쟁 속에 승자만이 살아남는 사회 구조와 미래 희망에 대한 상실감 때문에 누구나 신경증적인 증세를 보일 수 있는 세상으로 비친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이러한 스트레스가 엉뚱하게도 기득권층이 아닌 소설 속 주인공의 처지와 같은 대한민국의 을들을 향해 날을 세운다는 점이다.
▲ 한 편의 로드무비 같은 청춘들의 이야기
시현은 업무를 꽤 능숙하게 해내 일반상담사에서 전문상담사로 승급해 시급을 조금 더 받게 된다. 콜센터에서 잔뼈가 굵어지면 일반 주문을 처리하다 진상처리반으로 옮겨진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콜센터 상담원들은 긴장한다. ‘크리스마스의 쓰나미’라고 불릴 정도로 주문 콜이 엄청나게 몰리기 때문이다. 진상을 만날 확률도 그만큼 올라간다. 이때 안하무인격으로 민원을 제기해 대는 ‘슈퍼 진상’이 시현 앞에 등장한다. 듣자하니 그는 대기업의 부장이란다. 한창 일할 시간인 오후 1시에서 6시 사이에, 그것도 하루에 몇 시간씩 전화기를 붙들고 있는 대기업의 부장이 현실에 존재할까. 진상의 세계에 존재할 뿐이었다.
집안 사정으로 아나운서 아카데미에 더는 다니기가 어려워져서 아나운서 꿈마저 멀어져가는 시현은 감정이 폭발해 부산 해운대가 주소인 바로 그 갑질의 최고봉에 찾아가 ‘사이다 복수’를 하겠다고 선언한다.
시현을 짝사랑하는 동민이 이 길에 따라나서고, 처음에는 만류하지만, 숨 막히는 콜센터에서 탈출을 꿈꾸던 주리와 용희, 형조 역시 여기에 합세한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감행된 이들의 즉흥적인 탈주를 들여다보면 로드무비 같은 경쾌함이 한껏 살아난다. 인물들은 그동안 감정노동 속에 억눌린 진짜 감정과 생존을 위해 너무 빨리 배워버린 것만 같은 ‘굴욕’ 이면에 웅크려 있던 자아를 발견한다. 소설에는 갑질 속에서 신음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현실을 극복하려는 청춘들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친다. 불투명한 미래 앞에서 꿈을 포기하고 삼포, 오포를 넘어 칠포를 말하는 젊은이들에게 강주리, 우용희, 최시현, 박형조, 하동민 등 우리 청춘들의 이름이 남다르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