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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서 작가님께서 가장 염두에 두신 부분은 무엇인가요?

저한테 이번 전시는 제국주의 역사와 근대화 그리고 산업화를 거치면서 만들어진 풍경을 바라보고 탐구할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한강변과 인천 개항장엔 근대화를 둘러싼 시간과 질문이 응축되어 있고 저에겐 시간과 역사가 육박해 오는 장소였는데요. 과거의 잔상과 잠재된 것, 익숙한 것과 낯선 것, 이런 생각을 하면서 도시를 걸었어요. 그 우리가 어떻게 상상되었는지 또, 그것이 어떤 풍경을 만들었는지 바라봤습니다. 전통과 현대의 틈을 고민해 온 만큼 양자를 잇는 근대의 현장을 오가면서 정체성과 땅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저는 이 전시를 통해 탈식민지적인 상상과 시선의 역사 그리고 동아시의 자연관과 같은 제 관심사를 작업으로 구현하려고 했습니다. 근대화와 산업화를 거치면서 우리가 만든 시대의 풍경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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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의 배경이 실제로 다니는 특정 장소가 많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장소를 먼저 결정하신 후, 작업을 시작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도시환경과 풍경에서 많은 영감을 받는데요. 우리는 도시에 살고, 저도 도시에서 생활하고 있어요.
일상의 공간이 항상 친숙하기만 한 건 아니고 삶의 환경에 따라 우리 관점이 변하고 제가 변하면 풍경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작업의 소재가 될 장소를 먼저 결정하지는 않지만 어떤 이야기가 사건에 따라서 친숙한 공간도 다르게 보입니다. 저는 이런 변화의 순간을 잡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그림들은 그냥 산수화가 아니라 제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선대 화가들의 산수화를 보면서 땅에 대한 그들의 관심과 애정을 확인하고 제가 어떻게 오늘을 바라보고 표현해야 될 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내가 사는 곳의 어제를 알아가고 한 장소의 다른 시간대를 오가면서 이 땅의 새로운 의미와 가능성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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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께서는 산수화 어법 안에서 재료와 형식 실험을 지속하고 계십니다. 혹시 전통 매체를 다루시면서, 다른 매체에 대한 갈증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평면 작업을 입체적으로 설치하시거나, 테이핑으로 벽화 작업을 하셨을 때처럼 작품이 보이는 방식을 계속 고민하고 계시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저는 제 경험을 여러 징후와 연결해 회화와 드로잉 그리고 벽화와 같은 방식으로 표현해 왔어요. 이런 방법을 통해, 산수화의 맥락 안에서 전통과 현대, 산수와 도시 풍경이 섞이는 문화적 지평을 그리려고 하는데요. 저는 다른 매체나 그 표현에 대한 갈증보다는 작품의 형식에 대해 고민하고 있고, 그래서 제 필요에 따라 다른 매체를 사용해요.
동아시아에서는 자연의 무한함을 표현하기 위해, 족자나 병풍처럼 닫혔다 열리는 형식을 사용하는데요. 여기엔 일상과 작품의 경계를 지우려는 의도가 깔려 있어요. 저는 이런 동아시아 미학에 흥미를 느껴요. 그래서 벽면에 드로잉을 하기도 하고, 투명한 비단 드로잉을 공간에 걸어두는 방식으로 설치하기도 해요. 그림과 글씨, 그리고 시를 한 공간에 구현해서, 그 사이에서 감각이 움직이는 시/서/화 삼절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이번 전시에서도 동아시아의 공간성을 시각화할 방법을 찾아보려고 하는데요. 제 생각에 전통이 그저 반복되어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변하는 것이고, 저는 이런 생각을 전시장에서 구현하고 싶어요. 작품을 겹치게 설치하고 중첩된 시간성을 표현해서, 이 공간을 어제와 오늘을 잇는 장소로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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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께서 표현방식을 계속 새롭게 시도하시되, ‘지필묵’은 손에서 놓지 않고 계시는데요. 지필묵의 가능성을 어디서 보고 계시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저한테는 ‘지필묵’이 친숙한 회화 매체인데, 다른 사람들에겐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이 매체는 ‘문방사우’라고 불렸고, 거기엔 우리가 이 매체와 맺었던 특별한 관계가 포함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 이 지필묵은 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겼고, 제가 보기엔 매체가 아니라 그것과 우리의 관계가 달라진 것 같아요.
제게는 지필묵이 여전히 매력적이에요. 제가 사용하는 붓은 부드럽고, 먹은 유연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요. 그래서 먹은 젖은 상태에서 화면 위를 계속 움직이고, 그리는 사람의 작은 호흡과 움직임까지 섬세하게 담아낸 다음에, 마르고 나서는 단단해지죠. 저는 한지와 마 천, 비단과 같이 여러 바탕재를 사용하는데요. 먹이 강하고 안정적이어서, 이렇게 여러 재료와 같이 쓸 수 있어요. 또, 농담의 스펙트럼도 넓어서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고요. 이렇게 많은 장점을 가진 매체를 제 표현력과 상상력 부족해서, 더 잘 활용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저는 재료의 실험과 변주를 계속하면서 지필묵의 가능성을 알아보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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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께서 작업에서 고전 설화를 자주 차용하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작업하실 때 리서치하시는 과정에 관해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저는 땅을 더듬어서 산수를 그리는데요. 거기서 어떤 설화를 듣거나 발견하게 될 때가 있어요. 이 오래된 이야기가 어떻게 저에게 닿았는지 생각하면 흥미로운데요. 지금도 매일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거기서 이야기가 생기는데, 그중에 어떤 건 시간이 지나도 살아남아요. 아마 그 속에는 다음의 누군가에게 전해져야 할 뭔가가 들어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이런 설화를 소재로 빌려올 때마다, 이것이 저를 숙주로 삼아서 누군가에게 전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요.
도시는 그곳의 이야기나 역사와 관계있고, 세월이 흐르면서 집단 경험과 기억이 이곳에 쌓이는 거죠. 그런 점 때문에 도시는 흥미로운 소재가 되는 거고, 저는 현장답사와 이야기를 섞어서 작업해요. 어떤 장소를 걷고, 거기에 묻혀 있는 이야기를 파내요. 스케치하고, 사진도 찍고, 그리고 산수화 어법을 빌려서 그림 그려요. 제 감정적 경험을 풍경에 넣고, 주변으로 밀려나거나, 잊힌 것들을 모으죠, 그리고 이런 조각을 상상적으로 연결해 화면을 구성해요. 이렇게 제 안에서 여러 시간과 이야기가 얽히는데, 이런 ‘이야기하기’는 제가 세계와 관계 맺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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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업에서 서울을 상징하는 많은 것 중 ‘63빌딩’, ‘한강’ 등을 소재로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서울의 인구는 1960에서 70년대 산업화와 경제개발을 통해 폭발적으로 늘어났어요. 서울의 풍경은 이런 고도성장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고요. ‘63빌딩’은 1980년 착공을 시작해서, 1985년에 완공된 빌딩인데요. 지금은 이것보다 높은 건물이 18개나 있지만, 18년 동안 우리나라의 최고층 빌딩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63빌딩을 산업화를 상징하는 ‘마천루’라고 느껴요.
저는 이번 전시에 근대화를 둘러싼 사건과 질문이 모여있는 한강과 그 주변을 작업의 소재로 삼았어요. 자주 강변을 바라보니까, 몇 개의 상징적 빌딩이 작업에 자주 등장하게 됐어요. 강이 흐르고, 강변엔 고층 빌딩들이 서 있고, 멀리 도시를 안은 산세가 보이는데, 지금의 이 모든 것이 서울의 자연스러운 산물인 것 같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리고 이전의 보도 사진과 제가 본 도시 풍경을 교차해 화면을 구성하기도 했어요. 이렇게 한 장소를 다른 시점에서 바라보는 방식으로 도시가 변화하는 방식을 살피면서, ‘풍경의 역사성’을 추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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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많은 화가들이 산수화를 그릴 때, 단순히 자연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관적 관점을 드러내고 해석하여 새롭게 표현했습니다. 작가님의 태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껴지는데, 도시의 풍경을 그리실 때 특별히 어떤 점을 드러내려고 하시는지요?

저는 지형적이고 사회적인 풍경과 제가 맺는 관계를 화폭에 담는데요. 조선의 산수화가처럼 도시의 이야기와 시간을 엮어서 ‘인지적 풍경’을 그리려고 해요. 화폭의 여백은 도시의 형태를 드러내면서 제 생각의 바탕이 되고, 보여주기보다는 상상하게 하려고 운무를 그렸어요. 사라진 시공간에 대해 상상하면서 도시를 거닐고, 거기서 발견한 것들을 화면에 넣어요. 제 작업의 바탕을 이루는 전통과 현대의 관계를 토대로, 시대적이고 개인적인 기억을 불러내며 산수화를 그리는데요. 이런 방식으로 개인의 삶이 어떻게 역사가 되는지에 대해 생각해요.
제게는 마음과 풍경이 비슷해 보이고, 그래서 지리적이고 파노라마 같은 풍경을 다루면서, 제 감정적 경험을 넣어서 마음의 풍경을 그리려고 노력해요. 기억 저편에 존재했던 이야기와 역사적 사건, 그리고 개인적인 해석을 화면에 쌓아서, 도시 지층을 풍부하게 만들고 싶어요. 그렇게 풍경을 기록하기보다는 그 울림을 표현하려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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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서 사실과 허구, 과거와 현재 등 여러 요소가 혼재되어 있는데 이것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새로운 풍경이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관람객이 열린 해석의 가능성을 두고 작품을 감상하길 바라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도시를 걸으며 얻은 것들을 모아서 저와 연결해요. 이런 연결을 통해서 거기서 또 다른 의미를 만들고 이야기하는데요. 단절된 공간을 가상으로 연결하기도 하고, 오래된 자료를 통해 사라진 세계와의 관계 회복을 꿈꾸기도 하고요. 도시와 풍경을 새롭게 바라보기 위해서는 다른 관점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저는 이번 전시를 통해서 관람객들의 다양한 의견을 듣고, 저 자신을 점검하면서 생생한 의미를 만들고 싶어요.
이 전시는 열린 해석을 매개로 그때보다는 지금에, 그리고 역사적 현실보다는 예술적 상상력에 무게를 두고 있는데요. 저는 이 전시를 준비하면서 여러 장소를 넘나들었고, 그러면서 왠지 시간을 넘나드는 일도 쉬워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저는 전시장을 찾아주시는 분들도 각자의 열린 해석을 통해서, 이런 경계 지우기를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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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작업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저는 그동안 타자의 시선이 개입된 근대에 관심을 가졌고, 산업화의 풍경을 작업의 소재로 삼기도 했어요. 앞으로도 근대화와 도시형성 그리고 우리가 만든 풍경에 대한 이런 관심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그리고 이런 경험을 거쳐서, 최근엔 작업을 통해 가보지 못한 영토를 걸어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는데요. 저는 좀 더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풀어놓고 싶어요. 사적인 기록의 형태로 문화 정체성과 기억, 그리고 공간을 탐구해 보려고 해요. 저만의 ‘작고, 느리고, 소박한, 역사를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지금은 내면의 영토나 상상적 공간을 시각화할 방법을 찾고 있어요.
여기엔 동아시아 미학과 매체의 가능성을 계속 실험하려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는데요. 제 나름의 시간성을 정립하고, 지필묵을 동시대적으로 활용해 가고 싶어요. 이런 시도를 통해 얻게 되는 다양한 관점은 전통과 현대의 재맥락화나 제도 밖 전통에 대한 저의 질문에 닿아있어요. 제 정체성과 매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고, 이런 과정에서 얻어지게 될 회화적 결과물들을 다음 작업을 위한 실마리로 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