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브 수림미술상 2022

공무도하(公無渡河)

2023.08.28(월) - 2023.10.05 (목)

  • 기간

    2023.08.28(월) - 2023.10.05 (목)

  • 장소

    수림큐브 지도 바로가기

  • 시간

    월~토요일, 12시~18시 (일요일, 공휴일 휴관)

  • 주최

    수림문화재단

전시개요
작가노트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줄곧 걸음걸이, 걷는 방식, 발자취 같은 것을 생각했다. 지난 몇 년간 서울이 아닌 곳에서 여러 할머니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걸음, 자세, 몸짓 등이 눈을 감아도 그려졌다. 구부러진, 절룩거리는, 힘없는 소리 같이 또렷하게 표현될 수 없는 것들이 말해지는 일에 대해 고민했었다. 언어
화 되지 못한 형상과 소리, 비언어적 감각들을 ‘시김새’라는 우리 음악의 장식음적 기법에 빗대어 표현해왔다. 시김새는 음과 음을 유기적으로 연결할 수 있게 도와주는 가는 근육 같은 장치로 걸음걸음을 도와주는 지팡이 역할을 한다. 내가 줄곧 걸음걸이 같은 것을 떠올린 이유는 무지외반증으로 인한 지속
적인 발의 통증 때문이었다. 무지외반증은 모계의 유전적 병으로 엄마, 할머니로 이어져 세대를 거쳐 반복된다.

이번 전시는 본인의 할머니와의 경험에서부터 출발한다. 열두 살 때, 걸음이 불편한 할머니와 단둘이 나이아가라 폭포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할머니는 죽기전에 그 폭포가 꼭 보고싶다고 했었다. 몸에 내재된 물을 매개로 하는 생물학적 기억을 따라 물로 회귀한 이를 생각하며 <공무도하가>를 다시 불러본
다. 지느러미가 발로 온전히 진화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생명체는 지팡이를 짚으며 소리로 시각을 그린다. 몸을 덮고 있던 비늘조각들이 음계(scale)가 되어 인간의 수명보다 더 오랜 시간을 관통한다. 할머니의 시간에서 나의 시간으로 연결되는 이 작업은 조상들의 과거를 재기억하고 인간과 비인간의 세
계를 연결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마침내 개인의 신체적 통증으로 인해 파편화된 시간을 재서사하고 조금씩 자신의 소리와 리듬을 회복한다.
  • 내용
    미래는 연장해야 할 경험들의 합(合)일뿐1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가장 오래된 서정시로 알려진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는 우리에게 익숙한 구절로 시작한다. 강을 건너려는 백발의 미치광이 ‘백수광부’를 말리는 그의 아내가 등장하고, 결국 남편이 물에 빠져 죽자, 아내도 한탄하며 노래를 부르다 죽었다. 이 광경을 목격한 뱃사공 ‘곽리자고’가 자기 아내 ‘여옥’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여옥’은 ‘백수광부’의 아내가 부른 노래를 이어 불렀다. 이별과 죽음을 표현하는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는 시대상을 반영하는 집단 서사시가 개인적 정서를 담은 서정시로 변화했던 시기를 대표하는 고대 시가이다.

    《수림미술상 후보작가전 2022》(2022, 김희수아트센터)에서 서인혜는 어머니의 노동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하여, 다양한 지역의 레지던시에 머물면서 만난 할머니들을 리서치한 과정을 설치, 영상, 사운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언어화를 시도했다. 이번 전시 《공무도하》에서 작가는 모계의 이야기를 통해 개인적 서사와 정서를 예전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서인혜가 영상 작품 〈방울물 여인〉(2023)에서 인용하기도 한 프랑스 소설가 아니 에르노(Annie Ernaux)의 작품 구조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데, 그의 소설은 자신의 존재적 기원과 사적인 이야기를 다루되, 이것을 사회적으로 확장하면서 일반적 자전 소설의 한계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서인혜가 작업에서 지속해 다루고 있는 불완전한 ‘파편들’, 탈중심적인 ‘주변부’에 관한 관심과 여성, 모계에 관한 이야기는 굳이 거대한 동시대 포스트 휴먼 담론에 기대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시대적 흐름을 같이 한다. 작가가 주목하는 미시적인 세계는 그의 작업에서 새로운 기호와 언어로 작동하면서, 고정된 위계를 다시 설정한다.
    《공무도하》는 2층-1층-지하의 순서대로 구성되어 수림큐브 6개의 공간을 유기체처럼 연결하고 있다. 6개의 다양한 조각들은 한데 모여 이야기를 완성한다. 작가의 외할머니 생전에 함께 여행했던 기억부터 시작하여 모계의 유전으로 이어지는 신체적 통증의 원인을 시간을 거슬러 추적한다.(2층) ‘물’을 매개로 이어지는 생사는 고대 서정시와 작가의 경험이 중첩되어 새로운 풍경이 된다.(1층) 광물질로 남겨진 사라진 존재는 반복되는 노래를 통해 영속성을 획득하고, 안팎을 구분하는 경계에서 새로운 질문들이 이어진다.(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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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니 에르노(Annie Ernaux), 「세월」, 신유진 역, 1984BOOKS, 2022, p. 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