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VS

Critic : 정일주
_법칙은 없거나 자의적이다

AVS 2023-24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 평론
법칙은 없거나 자의적이다

글 : 정일주
  • 내용


    망치에 찧은 듯 손끝 마디가 아팠던 이유는 사구소체(Glomus body)가 비정상적으로 커진 탓이었다. 피부의 망상 진피(Reticular dermis)에 위치한 그것은 체온, 혈압 조절을 돕는 기능을 갖는 신경-근-동맥성 구조(Neuromyoatrial apparatus). 무슨 까닭인지 그게 얽히고 커져 보랏빛 종괴가 돼 그리 오랫동안 날카로운 통증을 안긴 것이다.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에서 작가 김준수와 황동현 로봇공학 연구자의 관심은 온통 손에 집중돼 있었다. “동물 중에서 꽤나 완벽한 동물인 사람”만큼 손을 잘 쓰는 로봇을 탐구하며, 그들은 손을 사용한다는 것의 의미와 그것이 갖는 확장성에 관한 다각적 해석을 내놓았다. 두 사람이 나눈 이론과 견해를 살피다, 손톱이 뽑힐 듯 강한 통증을 느꼈을 때 ‘몸의 일부를 로봇으로 대체한다면 그것은 얼마나 유용할 것인가 그리고 어느 정도 지속적이며 생산적인가’에 관해 했던 서투른 고민이 떠올랐다. 그리고 어쩌면 아픈 몸을 테크놀로지로 대체하려는 욕망과 인간을 능가하는 로봇의 개발 모두 근원적으로 콤플렉스에서 비롯되는 것이란 생각에 이르렀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나 칼 구스타브 융(Carl Gustav Jung)이 심층심리학에서 복잡한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주개념으로 활용한 콤플렉스. 사전적 의미를 들여다보면 이는 개인의 심적 내용 중에서 억압된 사고, 욕구가 서로 결합한 일군을 말하며 열등감 또는 합성물, 복합체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타인으로부터 많은 이해와 사랑을 받는 사람은 콤플렉스에 얽매이는 일이 드물며 타인에게 자신을 설명할 수 없고 이해시킬 수 없는 상황 속에 있는 사람일수록 콤플렉스를 지닐 확률이 높다. 무의식에 존재하기 때문에 보통 사람은 잘 인식하지 못하지만 강하게 표출되었을 때는 심각한 병으로까지 일컬어지는 이것은 외부의 요소로 인해 발생되어 피치 못할 사정으로 계속해서 가지고 있는 것이든 아니면 보이지 않게 내적으로 품고 있는 것이든 현대 사회에서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요소이다. 우리 눈에 가장 잘 표출되는 외형적인 모습에서 발생하는 콤플렉스에서부터 심지어 가장 가까운 사회 구성원인 가족에서조차도 느낄 수 있는 이 단단한 약점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나폴레옹 콤플렉스’, ‘타인 콤플렉스’ 등 인류의 원죄와 관련된 오랜 명성을 지닌 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하게 존재한다.

    콤플렉스는 부정적 뉘앙스를 내포하지만, 예술가들에게 그것은 예술의 연장선상에서 혼을 불러일으키는 하나의 원동력으로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까닭에 일반적 개념과는 확연히 다르다. <내일, 또 내일, 또 내일>로 만난 두 사람의 협업 과정 또한 이를 명확히 증명한다. ‘왜 로봇은 물체를 잘 잡지 못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연구를 시작한 그들은 ‘손의 기능은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해 각자의 답을 제시한다. 로봇이 손을 이용해 수행하는 다양한 작업을 더 효과적이고 완성도 있게 만들고자 사람 손의 생체역학적 구조와 기능을 모사하는 데 집중하는 황 연구자는 사람 손의 정교한 동작을 로봇 손을 통해 재현하는 것뿐 아니라 감정의 표현, 상황의 인지 등 사람 손의 여러 역할을 로봇 손에 담아내고자 하는 연구자료를 한눈에 가시화하며 다음 단계로의 발전을 시사했다. 그 일련의 과정에서 김준수는 관람객이 로봇 손과 상호 인식을 의미하는 악수를 수행하고, 그 움직임에서 기인하는 수치를 특정 방정식에 적용하여 로봇팔에 장착된 작품에 전송하면 그 아웃풋이 약 100개의 솔레노이드(solénoïde) 움직임을 구현하는 멀티미디어 신작을 개발했다.

    작가 민찬욱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자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을 연구하는 조철현 고려대학교의료원 교수의 협업은 콤플렉스라는 현실 행동이나 지각에 영향을 미치는 무의식의 감정적 관념을 초월해 삶의 끄트머리인 죽음 그 자체를 논의한다. 새로 탄생한 종으로까지 여겨지는 디지털 휴먼이 스스로 생과 사를 결정하는 예술적 상황을 통해 그 의견의 결과물은 정신의학적 사유로까지 경계가 확장된다. “알고리즘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까닭에 논알고리즘의 영역을 포함한 포괄적인 고민이 필요한 디지털 휴먼/자아”에 대한 두 전문가의 고민은 인간 본연의 능력과 정체성을 더욱 사려 깊이 살피게 한다. 우리는 줄곧 예술가에게 필요한 소양은 예민한 감각 혹은 감성이라 주장하며 반대로 과학자(의학자)에겐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들이댔었지만, 어느새 그 관계는 변형·재정립되며 단지 예술 또는 과학으로 나뉘지 않는 또 다른 무엇의 결과물로 완성되고 있다.

    프로그램을 통해 “예술가란 인간의 존재에 대해 사유하고 질문하며 이야기하는 시인”임을 깨달았다는 조철현 교수는 말한다. “과학적 사고와 판단토록 훈련받은 의학 연구자로서 그리고 동시에 마음이 힘든 환자들을 만나고 치료적 작업을 하도록 단련된 임상의사로서, 협업에 임하며 미술 작가와는 사뭇 다른 인물로 그와 접점을 찾으려 했다.” 디지털 휴먼의 죽음의 과정을 표현한 민 작가의 작품에서 영향을 얻은 그는 존재와 비존재, 살아있음과 죽음 이렇게 대비되는 두 가지 상태만을 놓자면 디지털 휴먼은 인간과 유사성이 있다고 여길 수 있겠지만 존재와 비존재 그 사이 어디쯤 또는 살아있다가 죽어가는 과정을 들여다본다면, 디지털 휴먼은 인간과는 전혀 다른 존재군임을 자각하게 되며 작가는 이를 명확히 포착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러한 깨달음이 자신이 디지털 트윈을 어떻게 바라보고 기대할 것인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임을 피력하며 조 교수는 덧붙인다. “작품 완성을 지켜보며 디지털 휴먼을 ‘사람을 흉내 내는, 디지털로 구현된 그 어떤 객체’로 여기기보다 ‘인간과는 전혀 다른 독립된 종’으로 간주하고 받아들이는 게 맞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아울러 현재는 ‘사람’을 실례로 더욱 사람같이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어떤 특이점이 왔을 때 ‘디지털 휴먼 다움’이라는 것이 주요 논제로 등장하면서 인간과 구별되는 독립된 종으로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미디어 아티스트 듀오 방앤리와 뉴로모픽(Neuromorphic) 반도체 설계 기술을 연구하는 박종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박사 또한, 영역과 결이 다르며 생각하는 방법과 표현하는 도구가 다른 전문가들의 협업을 가늠케 했다. 그들이 선보인 인간의 감각이나 지각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이 도래할 미래를 선행 사고해 보는 내러티브형 연작은 보는 이로 하여금 현재를 더욱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며 미래를 진중하게 예측하게 이끌었다.
    머지않은 미래에 다가올 인공지능과의 공존, 디지털 휴먼과 함께 사는 세상에서, 과연 우리 인간들이 그(것)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힌트를 제공한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황동현 연구자는 이 프로그램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연구할 땐 정의된 문제를 풀고 가능한 이것이 최적의 해답이길 희망한다. 이러한 이유로 완벽한 기술을 완성하고자 하는 연구자 만족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자유롭고 창의적 사고의 예술가를 만나면서, 정말 좋은 기술은 개발된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이 만족하는 것임을 느끼게 됐다. 일부 아직 부족하거나 미완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사용자에게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언제든 그것을 공유하고 실제 쓰이도록 하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술가의 창조는 무의식에 대한 포기로부터가 아닌 무의식을 포착할 수 있는 능력으로부터 생겨난다. 예술이란 무의식의 원초적 상들이 작가에 의해 그 시대의 예술로 번역되는 것이며, 예술에 담긴 심상의 원형들은 시대를 초월하여 사람들의 무의식 심층을 활성화하고 의식을 새롭게 한다. 분석심리학적 용어로 표현하자면 ‘무의식의 창조는 콤플렉스’는 상징으로 작품세계 곳곳에 모습을 드러내며, 이 상징을 이해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예술 작품의 심리적 구조를 설명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 개인을 예술적으로 창조적이게 하는 요인들을 밝힐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