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림아트랩 재창작지원 2024

Critic : 이건명
_사람과 사람을 잇는 환대의 자리에서

수림아트랩 재창작지원 2024 <종묘 재래-악>: 평론
사람과 사람을 잇는 환대의 자리에서

글 : 이건명
  • 내용


    오랜시간 전통음악을 접해온 사람에게는 ‘제례’나 ‘제사’또 ‘굿’이라는 말이 결코 어색하지 않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신앙생활을 해온 나에게도 ‘종묘제례악’이나 ‘동해안별신굿’은 생소하거나 신비로운 영역이 아니다. 신앙적인 영역을 제한다면, ‘제사’는 일반적으로 ‘축제’와 비교할 수 있다. 특히 고대 음악의 시작이 풍요와 번영을 빌기 위한 제사에서 비롯된 축제라고 본다면, 이것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모두의 삶과 떼래야 뗄 수 없는 중요한 ‘의식(Ceremony)’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도 이전과 다름없는 이유로 여전히 축제가 펼쳐진다.

    수림문화재단의 '수림아트랩 재창작지원 2024'에서 연행된 피리 연주자 오초롱의 단독 프로젝트인 <종묘:재래-악>은 '제례(祭禮)'가 곧 '재래(再來)'를 위한, 즉, '죽음과 탄생'을 기억하기 위한 산 자들의 의식이라는 생각으로 창작되었다. 제례 의식은 결국 죽음 끝의 탄생을 기대하는 윤회의 소망이 담겨있기에 '재래(再來)'라는 의미로 해석되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공연은 2023 수림아트랩 선정작인 <재래(再來)악Ⅰ:종묘>를 재창작한 작품이다. 첫번째 작품에 이어 이번에도 기획자 신아름이 함께 했다.

    무대 위에는 어두운 조명 사이로 제사 의식을 치르기 직전의 고요함이 흐르고 있었다. 무대 사방의 각 모서리에는 제례 공간을 묘사하는 듯 네 개의 기둥이 자리를 잡고 서 있었다. 안쪽 중앙에는 술병을 중심으로 정주와 박이 놓여있어 제사를 위한 도구로서의 의미를 부여하였고, 그 앞으로 놓여진 세 개의 단에는 공연을 진행할 연주자의 다양한 악기들이 놓여있어서 언뜻 보기에도 다채로운 음악이 선보여질 것이 예상되었다. 무대 배경으로 향을 피우는 듯 한줄기 연기의 영상이 피어올랐다. 시작을 앞두고 객석은 충분히 채워졌다.

    프로그램은 총 6곡으로 종묘제례악 중 '귀인, 희문, 총유, 대유, 영관' 그리고 서도좌창인 '제전'까지, 각 곡마다 나름의 의미를 담아 새롭게 창작한 작품을 선보였다. 공연이 시작되자, 붉은 옷을 입은 오초롱을 중심으로 가야금 병창의 유정과 해금의 문새한별이 정주를 연주하며 걸어들어왔다. 기존의 제례악은 감상을 목적으로 한 음악이 아니었기에, 표현과 연주법 등이 감상자를 고려하지 않았다면, 오초롱의 이번 공연은 감상자로 앉아 있는 관객에게 어떤 메시지와 공감을 이끌어낼지 궁금했다.

    첫 곡은 오초롱의 피리 독주 <귀인>으로 공연의 문을 열었다. 종묘제례악의 '귀인(歸人)'을 관객을 향한 '귀인(貴人)'으로 바꾸어 재창작한 이곡은 피리연주자 오초롱이 어떤 연주자인지, 접하지 못한 관객에게 충분히 그 기운을 전하기에 충분했다. 단조로운 음들을 걷어내고, 나름의 담백한 선율과 깔끔한 구성으로 공연의 도입부를 장식하기에 더없이 좋았다. 오초롱의 연주는 처음부터 망설임이 없이 당당하게 시작되었다.

    첫 곡 이후 정주를 연주하며 중앙으로 이동한 오초롱은 , 물수건으로 손을 닦고 술을 따른 잔을 단 위에 부어 제사의 행위를 묘사했다. 이윽고 옆에 놓여있는 박을 집어들고 '드오~'라고 외치자 문새한별과 지유정이 정주를 연주하며 무대로 들어왔다. 가야금을 연주한 지유정 또한 오초롱의 기운을 받아 공연 내내 씩씩한 연주를 보여주었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 눈에 띄는 점은 가야금과 해금 두 연주자의 역할이었는데, 이제 막 시작한 두번째 순서에서부터 이들은 자신의 악기와 더불어 특수악기 뿐 아니라 노래까지 거침없이 선보였다. 구김 없는 오초롱의 노래에 가야금 병창 지유정의 목소리와 문새한별의 연주까지, 반복적인 가야금 선율과 어색하지 않은 화음 진행은 서도소리 <술타령>과 만나 곡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었다. 굳이 아쉬운 점을 꼽자면, 해금이 노래 만큼 서도소리의 성음을 충분히 표현해내지 못했다는 점과 전체적으로 저음 음역이 채워지지 않아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 정도겠다.

    이어진 세번째 곡 '井(총유)'도 인상적이었다. 기존 곡의 불규칙 박을 3박과 2박의 혼합박으로 구성하고, 반음계적 진행을 통해 제례의식의 신비감을 더했다. 오초롱의 생황 선율은 지유정의 가야금 연주에서 악센트를 활용한 리듬감이 더해지며 역동성을 불어 넣었고, 문새한별 또한 가야금을 잡고 활로 그어 전체 분위기를 한껏 끌어 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곡의 치밀한 구조와 밀도 있는 연주의 짜임은 못내 아쉬웠다. 다양한 선율과 표현들이 짜여진 순서에 맞춰서 '재생'되어 나오는 느낌이 아닌, 함께 호흡하며 음악을 넘어 하나의 의식으로 관객과 교감하길 기대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그런면에서 이 곡을 통해 이번 공연의 중요한 상징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공연의 중반에 오자 오초롱의 '재례'는 죽은 자를 위한 기존의 '제례'와 달리, 산 자들을 위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이 공연은 '제사'와 '축제'의 그 어디쯤에 있지 않은지 감각하게 되었다. 축제는 참여하는 사람들로 완성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리 잘 차려진 잔치라 할지라도 관객이 멀뚱이 서서 관망하기만 한다면 축제와는 멀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자연스럽게 이 공연에 있어서 관객은 어느 위치에 자리하는지, 기획자와 연주자는 관객에 대해 어떤 기대를 갖고 있었을지 궁금했다.

    네 번째 곡인 '대유변주곡(대유)'는 제례악에서만 사용되는 '당피리'를 과감하게 사용한 점이 돋보였다. 기존 향피리와 이를 개량한 악기가 이미 충분히 활용되고 있어, 굳이 당피리를 사용하여 창작을 하는 경우가 없기에 이 작품의 의미에 대해 곱씹을 수 있었다. 특히 김광복의 메나리 가락을 모티브로 창작된 선율들은 당피리로 연주하는 것인지 헷갈릴 만큼 자연스러워 감상용 연주곡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이번 공연에서는 배경의 영상 이미지 또한 곡에 따라 마치 제례의 진행을 반영하듯 변화를 이어갔는데, 한줄기 향을 피우는 이미지는 곡의 마무리를 향하는 다섯번째 곡 '되돌아든다'에서 '윤회'를 상징하듯 원형을 그렸다. 이 곡은 기존 종묘제례악곡이 아닌 서도좌창 '제천'과 반복된다는 의미를 담은 대표적인 정악곡인 '도드리'를 모티브로 삼았다. 악기들의 들고 나는 흐름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뤘다. 한곡 한곡, 나름의 주제와 의미가 분명하게 창작되어진 프로그램의 구성 덕분에 다양한 메뉴가 잘 차려진 잔치상을 앞에 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지막곡 '낮도거믄(영관)'은 황해도 굿의 <산염불>과 종묘제례악의 마지막 곡인 <영관>의 음악적 특징을 엮어, 민간의 제사음악과 궁중의 제례악을 하나로 포용하고자 했다. 향을 비워 술을 따르며 시작한 의식이 굿으로 여며지는 흐름이 사뭇 어색했지만, 공연을 관통하고 있는 '산 자를 위한 염원'이라는 측면에서 나름의 의도를 파악 할 수 있었다. 마지막 순서의 특징이라면, 연주가 진행되는 동안 영상에 관객들의 소원문이 띄워졌다는 점이었는데, 일상에서 비는 저마다의 소원들이 하나씩 지나갈 때마다 왠지 모를 이질감이 느껴졌다. 뭐랄까, 이번 작품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 떠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번 작품을 통해 확인 할 수 있었던 점은 오초롱 뿐 아니라 함께 한 연주자들의 훌륭한 연주력이었다. 여러 악기를 다루면서도 각자의 맡은 역할을 오차 없이 해내는 모습은 프로 연주자의 면모를 충분히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던 것 같다. 연주 중간에 나눈 연주자들간의 대화 내용은 출연자들이 공연작품의 큰 방향보다는 당면한 연주곡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관객에게 한곡 한곡 친절하게 설명하고, 출연자와의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은 하나의 흐름으로 연행되는 기획에서는 오히려 작품의 몰입을 방해한다. 술잔을 따르고 박을 들어 단호하게 "드오"를 외치는 순간부터 마지막 곡까지 한 호흡으로 흐름을 이어갔다면 마지막 곡의 마무리 장단에서 느껴지는 감동이 훨씬 컸으리라 생각된다.

    해금의 활용도 못내 아쉬웠는데, 저음해금에 가야금, 또 특수악기와 노래까지 한바탕 열정을 쏟았음에도 인상적인 장면이 남지 않았다는 것은, 주요 악기의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중심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남겼다. 지난 작품의 아쟁 대신 해금을 차용하며 적잖은 고민을 했다면, 악기의 활용과 음악적 효과라는 측면에서 해금의 비중이 충분히 컸어도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런 면에서 문새한별의 멘트 중 "(아쟁보다)더 잘해야 하는데.."라는 말은, 한곡 한곡 완성도 있게 연주하는 것을 관객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실연자'의 관점에만 머물러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공연이 좋은 연주를 보여주는 것 이상의 '재래(再來)'의 의미가 중요하다면, 단절되어 파편화된 멘트로 인해 관객의 호흡과 몰입을 방해하는 지점을 신경써야할 것 같다. 공연의 흐름을 만들어내는데 많은 연주자들이 놓치는 부분이 '멘트'이다. 이것을 단순한 정보 전달과 소개안내 정도로 치부하지 않고 공연 전체의 흐름을 이끌어내는 매개체로 활용한다면 작품의 완성도를 한층 끌어 올릴 수 있다.

    냉정하게 보자면 이번 공연은 '제례악의 재창작'보다는 '제례악 형식'을 차용한 실험적 창작음악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향후 '오초롱의 재래악'을 위한 작품의 흐름이 보완 된다면, 잘 하는 연주를 감상하는 대상으로서의 관객을 넘어서 작품 안으로 들어와 함께 교감하고 호흡할 수 있는 기획이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제사는 축제이다. 찾아온 이들이 머무는 그 시간이 중요하다. '머무는 것' 그것이 본질인 것이다. 삶 속에서 멈추지 못하고 나아가는 것에 지친 이들이 찾아와 잠시 머물러 쉬는 곳,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하고 풀어주는 곳, 그리하여 에너지가 쌓이고 다시 채워지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찾아온 이들을 기쁘게 '환대'한다. 그런면에서 시원 시원한 오초롱의 진행도 좋았지만, 마지막 곡 이후 성급하게 마무리한 것 또한 아쉬울 수 밖에 없었다. 오초롱의 '재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한 관객들이, 공연의 감동을 정리하고 충분히 내면화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면 어땠을까? 작품의 감상은 행위가 끝난 후에야 비로서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이번 프로젝트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차분히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것은 '아티스트 오초롱'을 드러내기 위한 것인가? 혹은 재창작 지원사업의 성과를 보이기 위함인가? 아니면 새롭게 창작된 작품을 관객과 나누기 위함인가? 개인적으로는 후자에 가까워야한다고 본다. 작품의 방향과 색깔이 명확 할 수록 아티스트가 돋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공연을 통해 오초롱의 다음 프로젝트가 기대되는 것은 이 모든 과정-'브랜딩(branding)'이라고도 말 할 수 있는-을 감당하기에 충분한 역량을 지녔다고 보기 때문이다. 관객(혹은 대중)에게 경력과 설명, 또 '잘 함'에 대한 증명을 넘어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구현한 작품 그 자체에 집중 할 수 있도록 기획해낸다면, 일차원적인 '기복신앙'으로서의 제례를 넘어서 '더불어 삶'에 대한 축제의 본질을 생생히 살려낸 작품으로 '재래(再來)'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