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림아트랩 재창작지원 2024

Critic : 송현민
_가곡으로 새 지도를 그려나갈 때

수림아트랩 재창작지원 2024 <가역반응Ⅱ>: 평론
가곡으로 새 지도를 그려나갈 때

글 : 송현민
  • 내용


    ㅣ목소리의 공간화: 음반 <시의 공간>을 떠올리며
    2020년 초에 시작된 펜데믹은 예술가들을 무기력하게 했다. 무대를 잃은 예술가들은 온라인 활동과 음반으로 활동과 명맥을 이어가고 이어갔다. CD 형태의 음반의 기능이 거의 무효화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지금. 그래도 음반으로 음악가를 처음 접하는 것과 무대로 처음 접하는 것은 많이 다르다. 특히 음반으로 접할 때는 더욱더 그러하다. 극장 무대라면 음악 외에 조명, 디자인, 의상, 분위기, 동선 등이 있다. 시각적인 것을 좌우하는 이러한 것들은 음악가의 음악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준다. 반면 음반은 공연에 비하면 단편적이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모든 것’을 담을 수 없다. 오직 음악가의 음악만 담길 뿐이다.

    이아름의 음악을 처음 접한 것은 펜데믹 시기에 출시된 그의 음반 <시의 공간>을 통해서였다. 그녀에 대한 정보나 이해가 전혀 없을 때였다. 그래서 전통음악의 한 갈래인 가곡(歌曲)의 문법과 창법으로 지은 창작곡 중 하나일 것이라 생각하며 음반을 틀었다. 그런데 오디오에서 흘러나온 소리들이 나를 둘러싼 공간, 시간과 뭔지 모를 화학 작용을 하는 것 같았다. 노을이 더 진하게 보인다거나, 밤의 고요함을 더욱 짙게 만들었다. 그녀에 대한 ‘오해’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매 곡들이 나를 이아름을 향한 ‘이해’의 길로 안내했다.

    당시 음반을 소개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중이던 나는 <시의 공간> 음반을 선정했다. 음반 속의 노래들이 풀려나가는 동안 방송국 관계자나 청취자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과 감정을 느끼는 것 같았다. 꼈다. 이아름이 이 음반(시의 공간)에 대해 말한, “꿈에서 들었던 선율을 기초로 풀어나간 음악으로 자연의 소리, 화이트 노이즈, 익숙한 지하철 소리 등 시공간이 사운드로 펼쳐지고 그 중심에 정가가 있다”(월간공진단 2023년 12월 65호)라는 말이 와닿는 순간이었다.

     
    ㅣ즉흥의 노래화: 즉흥음악 작업들
    그 이후 이아름을 만난 것은 2023년 한국즉흥음악축제에서였다. 그녀는 이 축제의 현장을 실험실처럼 느끼는 것 같았다. 현장의 막이 내린 후, 축제 후기를 나누는 공식적인 좌담회에서 그녀와 처음으로 대면했다. ‘왜’ 노래를 불러야 하고, ‘어떤’ 소리를 내야 하는지, 그 원동력을 들어볼 수 있었다.

    “악보는 ‘인간이 만들어 낸 친절한 문자’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때로는 그러한 악보가 음악가를 가두어서 사고와 영감의 확장을 방해한다고도 생각했습니다. 처음 즉흥음악을 알게 되었을 때는 소리를 마음대로 내지 못했습니다. 배운 대로만 해오던 음악과는 다르게 즉흥은 자율성과 창의성, 스스로에 대한 신뢰감, 정체성, 상대의 개성에 대한 존중이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즉흥음악은 앞으로 음악과 예술 분야에서 대들보가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무엇보다 연주자들의 내면을 진심으로 마주하고 소리로 소통하는데 즉흥음악의 멋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생각들이 이번 축제에 참여하게 된 계기입니다.”

    전력(前歷)을 찾아보니 2016년 신진국악실험무대 별난 소리판에서도 70분의 ‘즉흥음악실험’ 공연을 선보인 바 있다. 곡들의 제목이 ‘즉흥음악’ 1‧2‧3‧4‧5‧6으로 구성된 공연으로, 피리‧콘트라베이스‧피리‧피아노가 함께 했다.

     
    ㅣ가곡 창작의 애매한 좌표와 현주소 찾기
    이쯤 되면 알 것 같기도 하지만, 잘 모르겠는 것도 이아름의 음악 세계이다. 이것은 이아름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녀가 전공했고 주력하고 있는 가곡 창작의 현주소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가곡은 과거에 분명 풍류방을 대표하는 음악이었다. 악기 연주자들도 가사의 흐름에 매료되어 가사를 떼 내어 기악화할 정도로 매력적인 음악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가곡을 둘러싼 창작적 경향과 환경은 애매하다. 어쩌면 이 ‘애매한 위치’야말로 가곡-창작자, 가곡-예술가들의 현주소일지도 모른다. 나아가 애매한 ‘위치’와 이 지점(애매함)을 벗어나려고 하는 ‘의지’, 즉 위치와 의지 사이가 오늘날 가객들의 현주소이자 활동의 반경일지도 모르고. 그래서 작곡가인 누군가는 가곡 창법에 현대어 가사를 얹어 부르는 ‘요즘의 가곡’을 짓는가 하면, 누군가는 미술‧무용‧영화 등과의 만남을 일삼는 ‘이접(移接)의 가곡’을 선보이고 있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움직임은 예술적 완성도의 고하를 막론하고, 오늘날 가곡이 무엇인지를 들추고, 써내려 가며 정의를 내리고자 하는 움직임들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이아름의 <가역반응>도 ‘정리’와 ‘혼돈’ 사이를 유영하는 프로젝트라 할 수 있겠다. ‘가역반응’이란 무엇인가? 반응에 있어서, 정반응과 역반응이 빠른 속도로 일어나지만, 그 속도의 차이로 전체 반응 속도가 결정되는 화학 반응을 뜻한다. 음악과 거리가 먼 분야에서 이러한 제목을 차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이아름은 가곡의 미적인 특성을 보여주기보다, 가곡이 지닌 음악적 기능과 효용성을 ‘반응’을 통해 확인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시와 만난 <시의 공간>도, 즉흥음악 현장에서 음악가들과 만나 순간도 ‘가역반응’ 시리즈와 연계된 것이라 생각된다.


    ㅣ<가역반응>과 ‘가곡반응’을 몇 개의 각주
    거칠게 요약한다면 수림아트랩을 통해 만난 <가역반응Ⅱ>(2024.6.21/김희수아트센터 SPACE1)은 ‘재미’보다 ‘의미’의 무게가 실린 작품이다. 제목처럼 하나의 무대에 여러 가역반응이 작용‧반작용하고 있다. 이아름의 소리는 그녀가 직접 두드려 연주한 핸드팬과 반응하고, 무언(無言)의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배우들과 반응하기도 한다. 가사 속 이야기나 흥을 즐기는 민요‧판소리와 달리, 이아름의 가곡은 분위기를 적시고 공간을 물들인다.

    하지만 느린 흐름과 느린 노래, 그리고 그로 인해 벌어지다 못해 자음과 모음이 분해되고 해체된 창법의 소리를 극장공간에 몸을 밀어 넣은 뒤 1시간 동안 듣는다는 것은 아무리 의미 있는 공연이라 할지라도 요즘의 감성과는 상반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아름만의 ‘의미’가 곳곳에서 보여 흥미로운 공연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가역반응> 시리즈에 ‘재미’의 부스터를 달기 위한 각주와 레퍼런스를 챙겨줘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점에서 ‘가역반응’ 시리즈의 주인공이 가야 할 몇 개의 길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가역반응’ 시리즈를 이어갈 예정이라면, 가역 반응을 일으키고자 하는 범위와 대상체를 넓혀야 한다. 즉 하나의 무대를 다양한 요소로 채워야 한다는 말이다. 하여, 가곡을 선보이되, ‘가곡이 아닌 것’과 이뤄내는 연금술과 야금술이 중요하다. 가곡이라는 빨대를 꽂을 수 있는 예술가나 타 장르에 대한 탐구도 필수적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유행처럼 흐르는 음악의 장도 부지런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자음악과 여러 음향 장비, 한국 전통음악과 외국 민속음악과의 만남 등이 일시적인 가건물을 만들지라도 이러한 현상을 접하고 분석해야, 본인이 ‘걸어야 할 길’과 (남들과 겹쳐지지 않게) ‘피해야 할 길’을 알게 된다. 따라서 향후 레퍼런스가 풍부한 ‘가역반응’ 시리즈가 이어지길 바란다. 이번 공연을 보면서 떠오른 것들은 ECM 레이블에서 나온 여러 음반이었다. 대부분 목소리를 실험으로 삼은 이들. 대표적인 경우를 꼽자면 메레디스 몽크, 힐리어드 앙상블이다.

    둘째, 구체적인 가사와 추상적인 분위기의 ‘적절한 조화’가 필요하다. 가곡은 글자의 자음과 모음을 분해하는 파자(破字:자획을 풀어 나눠 맞추는 놀이)를 전제로 한다. 분명한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기에 노래에 담긴 이야기, 의미, 뜻은 공연 중 자막이나 해설자의 해설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가곡 예술가들이 노래를 통한 이야기나 의미 전달보다 모음의 소리를 중심으로 한 ‘분위기’ 표출에 신경 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 명의 가객이 책임지는 60여 분 분량의 무대라면 스토리까지는 아니더라도 노래들을 엮는 일종의 은유적인 이야기가 흘러야 한다. 아니면 발표할 곡들이 모였을 때 만들어 내는 이야기들의 성좌(별자리)가 펼쳐져야 한다.

    ‘가역반응’은 분위기는 흐르고, 가역반응의 원리가 흐르되, 관객이 함께 걸을 수 있는 이야기의 길과 이정표가 다소 부족해 아쉬움이 남는다. 가곡-예술가들은 가사(이아갸)와 함께 하는 본래적 성격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일종의 소리-실험으로 향하고자 한다. 하지만 실험에는 실험자도 중요하지만, 실험을 함께 행하고 지켜보는 목격자도 중요하다. 목격자가 관객이라면, 그들과 공유될 수 있는 ‘최소의 이야기’가 향후 필요해 보인다.

    셋째, 전작물인 ‘시의 공간’은 ‘가역반응’과 함께 가야 할 이아름만의 소리 실험이다. 따라서 ‘시의 공간’도 이어지면 좋겠다. 시를 통해 가곡과 일상의 풍경을 바꿔보았던 것처럼, 소설의 공간, 미술의 공간, 연극의 공간 등을 통해 그녀만의 ‘목소리 공간’을 여러 장르와 함께, 여러 장르에 걸쳐 창출하는 실험이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설과 만난 가곡, 미술의 선과 함께 흐르는 가곡의 선, 연극의 대사와 함께 흐르는 가곡의 운율적인 말들. 다양한 소재를 통해 이아름만의 ‘공간’ 시리즈가 이어지길 바란다.

    결론적으로 이아름의 <가역반응> 시리즈는 가곡을 통해 반응하는 세계를 살펴보는, 한 마디로 ‘가곡반응’이기도 하다. ‘정리’와 ‘혼돈’을 통해, 가곡의 쓰임새와 예술적 용도를 ‘정리’하고, 동시에 ‘혼돈’을 일으켜 정리된 것을 다시 지우고, 또 다시 ‘정리’해나가는 복잡다단한 변증적 과정이다. 따라서 완결된 작품으로써의 <가역반응>보다 중요한 것은 이아름이 소리의 여러 지대를 걸어가며 일으키는 ‘가역반응’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