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림아트랩 재창작지원 2024

Critic : 이규식
_실수애호가들의 대화록

수림아트랩 재창작지원 2024 전시 평론
실수애호가들의 대화록

글 : 이규식
  • 내용


    글리치필릭은 이수지와 임휘재의 체험적 서사를 따라가는 여정이다. 주어진 맵을 길잡이 삼아 관객은 무언가를 발견해 나가는 게임의 플레이어가 된 듯, 이수지와 임휘재가 만들어 낸 새로운 인터페이스 환경 속에서 완결되지 않은 길을 따라 걷는다. 각 방은 서로 다른 장면을 연출하지만 서사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관객은 스테이지를 탐험하듯이 전시를 관람하게 된다. 이곳에서 드러나는(드러낸) 작은 실수와 치명적인 오류 모두 그 자체로 전시의 핵심 요소이며 이수지와 임휘재는 이것들로부터 창작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그들이 창안한 합성어 글리치필릭(Glitch-philic)(‘작은 결함’을 뜻하는 글리치(glitch)와 단어의 끝에서 ‘좋아하는’이라는 의미를 덧붙이는 필릭(-philic)의 합성어)처럼, 전시는 실수와 오류라는 불완전함 속에서 생성되는 것들에 주목한다.


    #1. 글리치(Glitch)

    첫 번째 공간인 1층의 글리치 방에는 정육면체와 원통, 정사각형과 직사각형과 같은 기하학적인 도형이 위치해 있다. 이수지가 지난 네 가지 도구에서 선보인 도구 중 세 가지를 사용하여 만든 작업들은 점, 선, 면, 체로 이어지는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원형에 가까운 형태를 띈다. 이 기하학적 도형들은 이수지가 상상한 근본적이고 원형적인 형태를 구현하는 동시에, 글리치라는 개념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장치가 된다. 이를 통해 작가는 고정된 형태와 예기치 못한 어긋남이 공존하는 미학적 지점을 탐구한다.

    전시의 제목이 뜻하는 바와 같이, 이수지의 작업에서 글리치는 중요한 요소이다. 사소한 실수를 의미하는 글리치는 비디오 게임이나 디지털 환경에서 발생하는 작은 오류를 뜻하기도 한다. 게임 속에서 글리치는 인터페이스 환경 속에서 예기치 못한 변수로 작동하는데, 일부 유저는 게임 플레이의 한 요소로서 글리치를 이용한다. 이와 유사하게 이수지는 계획과 결과 사이의 미끄러짐을 단순한 오류로 여기지 않는 대신 창작의 중요한 과정, 그리고 미학적 요소로 수용한다.

    이수지의 작품 속 어긋남은 작가가 스스로 글리치로 명명하지 않는 한, 결함인지조차 알아차리기 어려울 만큼 미세하다. 예상하지 못한 미세한 미끄러짐은 이것들에 대체불가능한 고유성을 부여한다. 작업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작은 결함을 포용함으로써, 이것은 더이상 수정해야할 치명적인 오류가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열쇠가 된다.


    #2. 버그(Bug)

    글리치 방의 맞은편에는 버그 방이 조성되어 있다. 디지털 환경에서 버그는 시스템에 일시적이고 사소하게 간섭하는 글리치와 달리 정상적인 수행이 불가능할 정도의 치명적인 오류를 발생시킨다. 버그 방에는 이수지의 실패한 작업의 흔적이 놓여 있다. 맞은편의 작업들이 사소한 결함을 지닌 채 ‘완성된 작품’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면, 이곳에는 치명적인 한계를 마주해 완성에 도달하지 못 한 작업들이 머물러 있다. 함정을 마주하여 게임 오버된 기록처럼, 혹은 실수와 실패를 복기하는 오답노트처럼, 작업 제목에는 작가의 코멘트가 덧붙여져 있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마지막 실패를 거친 뒤 아마도 작가는 ‘작품’이라 명명할 수 있는 완성도에 도달했을 것이고, 그것은 맞은편 방에 놓여 있을 것이다.

    버그 방에 놓인 작업들은 작가가 설정한 완성의 지점에 도달하지 못한 채 어정쩡한 단계에서 영원히 멈춰진 존재이며, 그렇기에 태생적으로 작품으로서 명명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수지와 임휘재는 이들을 개별적이고 고유한 존재로 인식하고 전시하며 관객에게 선보인다. 이러한 태도는 실패를 통한 통찰과 교훈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실패로부터 생성되는 새로운 창작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과정 중에 있는 것, 무엇이라 명확히 호명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상태, 실패의 결과물을 전시하며 이수지는 완성된 작품 이면의 세계를 조명한다.


    #3. 과거와 현재와 미래

    세 번째 공간인 지하 1층의 두 방에는 각각 이수지 작가의 세 가지 도구와 임휘재 기획자의 텍스트가 설치되어 있다. 이는 전시의 프리퀄이라 할 수 있는 네 가지 도구에서 이어져, 이번 전시에 사용된 도구들과 일 년 전의 생각, 그리고 현재의 생각이 혼재된 공간을 이룬다. 이곳에서 관객은 손때 묻은 도구와 과거가 되어버린 글을 통해 두 사람의 시간을 되짚으며,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순간을 감각하게 된다.

    이번 전시를 위해 이수지는 지난 해 선보인 네 가지 도구 중 세 가지 도구―실을 합사하는 도구, 합사한 실로 속이 빈 육면체와 원통을 만드는 도구―를 선택하여 사용했다. 창작자가 완성이라 선언하는 순간 박제되는 일반적인 작품들과는 달리, 이곳에 전시된 세 가지 도구는 여전히 실제 도구로 기능하며, 일 년이라는 시간을 그대로 수용한다. 그때와 연결되어 있지만 지금은 그때와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작가의 말처럼, 손때 묻은 도구들은 그 세월 동안 자연스럽게 변화한 모습을 드러낸다.

    작년 전시에서 극적인 연출로 선보였던 임휘재 기획자의 텍스트 작업 역시, 일 년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관객에게 보여진다. 종이에 박제된 과거의 텍스트는 현재의 시점에서 재조명되며 과거를 반추하고, 끝을 호명하기 싫었던 순간을 다시 꺼내어 보여준다. 과거에 작성된 임휘재의 글은 현재 글리치필릭에서 그들이 다루고자 하는 지점을 정확하게 관통한다. “창작의 순간, 작품의 완성을 승인하고 공개를 허가하는 것은 오직 창작자 자신뿐이다. 그러나 우리의 이따금에서 끝의 단언은 불가능하다.”

    전시의 마지막 공간인 2층에는 관객이 직접 개입할 수 있는 공간이 구성되어 있다. 이곳에서 관객은 벽에 설치된 못과 곳곳에 배치된 실을 활용해 공간에 직접 개입하거나, 심지어 훼손하고 파괴할 권한을 부여받는다. 이수지와 임휘재는 이 공간이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변형되며, 관객의 참여가 작품의 일부로 작용하기를 바랐다. 자신에게 꼭 맞는 도구를 만들어 노동 집약적인 형식의 작업을 이어오던 이수지는 이러한 시도를 통해 창작의 과정을 관객으로 확장하고, 그 속에서 미래에 대한 방향성을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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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리치필릭에서 이수지와 임휘재는 실수와 실패를 작품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창작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한다. 이들의 여정을 따라가며, 우리는 사소한 오류를 특별하게 바라보는 시선과 중대한 실패를 품어 안는 태도, 흘러가는 시간을 감각하며 현재에서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상상하는 시간을 가진다. 이곳에서 실수와 오류는 창작의 과정에서 배제해야 할 요소가 아니라, 작품을 대체 불가능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수지의 작업은 완벽함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완전함 속에서 발견되는 우연과 가능성에 집중한다. 글리치필릭은 실수라는 필연적 요소가 창작의 본질에 깊이 자리하고 있음 보여주며 불완전함 속에서 탄생하는 것들에 다정한 시선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