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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수림뉴웨이브:결
원나경 〈소리무늬〉공연 리뷰
고용한 역행: 2025 수림뉴웨이브 원나경의 <소리무늬>를 돌아보며
한국 전통음악에서 ‘작곡(作曲)’과 ‘창작(創作)’은 서양음악에서의 ‘작곡(作曲)’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작곡가와 연주자가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그렇다. 과거의 음악가들은 오랜 기간 ‘체득’해 온 음악적 질료를 토대로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고 발전시켜 왔다. 연주자는 ‘작곡가’이면서 본인 스스로 하나의 ‘작품’인 셈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창작’은 전통의 반대 개념이 아닌, 전승의 필수불가결한 행위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국악계에서 ‘창작’은 대중음악, 영상, 무용 등 다른 장르의 요소를 무분별하게 차용하거나, 해당 장르의 논리를 적극적으로 내면화 하는 양상을 일컫는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국악계에서 창작을 설명하기 위해 자주 동원되는 ‘재해석’도 비슷한 맥락에서 상당히 왜곡되고 오염된 개념이다.
2025 수림뉴웨이브에서 선보인 〈소리무늬〉를 곱씹으며 원나경이 전통음악에 대한 탐구에 천착해 온 해금연주자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해금연주자가 전통음악을 한다는 것이 터무니없는 동어반복처럼 느껴지겠지만 위의 상황을 감안했을 때 이 수식어는 분명한 힘을 갖는다. 삼현육각이나 산타령 등의 지역적 분화를 조명하거나 해금으로 연주된 적 없는 성악곡을 연주해 해금의 어휘를 확장하는 등 지금까지 원나경이 해왔던 작업은 여러 지역의 음악을 학습하고 체득하면서 자신의 세계를 넓히는 것이었다.
원나경은 자신의 외부에 놓인 음악을 재료나 도구로 바라보지 않고 자신의 신체에 새겨 넣는 실천, 수행적 행위로 여긴다는 점에서 여타 음악가들과 창작의 출발점이 다르다. 물론 전통음악의 자장을 고수하는 그의 태도는 가계(家系)적 배경이나 교육 제도 속에서 형성된 규범의 영향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창작의 태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물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류에 역행하는 듯한 원나경의 제스처는 전통음악을 주변화해 온 서구 중심적 위계와 오랜 타자화의 감각을 비판적으로 환기한다.
공연의 제목인 ‘소리무늬’는 원나경이 그간 자신의 독주회 제목으로 사용해 왔던 단어다. 사람마다 지문이 다르듯, 목소리에도 고유한 성문(聲紋) 즉, 소리무늬가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공연은 2025 슈림뉴웨이브 주제어이기도 한 자신의 음악적 ‘결’을 잘 드러낼 수 있는 5개의 곡으로 구성되었다. 〈운운云云〉을 제외하면 독주회를 비롯한 여러 무대에서 이미 초연된 적 있는 음악이었다. 연주자가 온전히 홀로 무대를 책임지는 콘셉트였기 때문에 연주자로서의 기량이 한층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첫 곡이었던 〈우음偶吟〉은 마치 연주자들의 스케일 연습 루틴처럼 길게 활을 쓰면서 두 음을 번갈아 연주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도입부에서 제시된 모티브 선율은 곡의 마지막까지 유지되는데, 그 사이 농현과 시김새를 통해 이루어지는 무수한 변주가 이 곡의 핵심이다. 해금은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방식으로 서서히 모티브를 이탈하며 다양한 스펙트럼을 펼쳐 내지만, 두 음의 직선적 연속성이 환영처럼 맴돌며 전체적인 음악의 구조를 지탱한다.
이번 공연에서 초연된 〈운운云云〉에서도 비슷한 접근법이 감지 됐다. 〈운운云云〉은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굽이굽이 뜨내기 세상 그늘진 심정에 불 질러 버려라 운운(云云)”이라는 이상의 소설 〈봉별기〉 마지막 글귀에서 영감을 받은 곡이다. 원나경은 시김새처럼 정량화 할 수 없지만 존재하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반복과 변주를 선택하곤 한다. 마치 글이나 말을 생략하거나 얼버무림으로써 여운을 생성하고 상상을 자극하는 단어인 운운처럼 말이다. 두 곡은 이후 이어지는 세 곡을 위한 일종의 다스름처럼 느껴져, 음악의 구조적 짜임새나 완결성보다는 해금의 시김새와 미세한 음향적 질감을 다루는 방식에 좀 더 눈길이 갔다. 이는 원나경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단서이기도 했다.
〈염불풍류〉, 〈화초사거리〉, 〈원나경 해금산조〉 같은 전통음악 레퍼토리에서의 높은 연주 밀도는 공연의 흐름을 단숨에 바꿔 놓았다. 경기 대풍류를 압축적으로 제시했던 〈염불풍류〉는 삼현육각 편성이 아닌 해금으로만 연주가 되었다. 오랜 기간 연마한 익숙한 전통음악 레퍼토리다 보니 앞서 연주했던 두 곡과는 전혀 다른 결의 활력을 만들어 냈다.
경기 사당패의 음악에 영향을 받아 토착화된 남도 잡가인 〈화초사거리〉는 경토리적 속성과 남도 계면이 절묘하게 교직된 독특한 성격을 지닌다. 보통 장구와 소고가 동반되고 해금으로 연주되는 경우는 드물다. 즉, 가창자의 육성을 해금으로 변환하는 과정을 거쳐 완성된 곡이기 때문에 호흡, 말붙임새, 시김새 같은 음향적 디테일에 대한 연주자의 해석이 돋보였다. 또한 가사가 사라지면서 원곡의 서사보다 연주자가 강조하고 싶은 해금 고유의 정동이 전면화되는 측면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원나경은 그동안 익혀 온 다양한 음악을 재배치하며 자신만의 산조를 구성해 선보였다. 익숙한 해금 산조의 큰 틀은 유지되었는데, 박을 어긋나게 하거나 음 길이를 달리해 익숙한 선율로부터 이탈하는 시도가 눈에 띄었다. 산조에서 듣기 어려웠던 전혀 다른 계통의 음악에서 파생된 선율을 돌출시켜 생경한 전개를 만드는 순간도 있었다. 또한 이러한 이질적 요소들이 기존 산조의 흐름 안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도록 이음새 역할을 하는 선율도 포착할 수도 있었다. 여러 요소가 직조되는 방식이 매끄럽지 않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으나, 원나경의 과거와 현재의 조각들이 얽혀 의도치 않은 풍경을 만들어 낸 것만은 분명하다.
효율과 손익, 인정과 상관없이 완고한 태도로 자신에게 몰두하는 음악가가 점점 더 귀해지는 것 같다. 상업적 욕구에 종속되지 않으면서 전통음악에 대한 애정과 호기심이라는 내적 동기를 따라가는 음악가 말이다. 장르 간 경계를 허문다는 저돌적인 태도를 가장하면서도 정작 어떤 것도 허물지 못한 채 제자리를 맴도는 숱한 창작의 결과물을 떠올린다. 원나경은 전혀 다른 장소에 서서 ‘음악’이 아닌 ‘자신’의 경계를 조금씩 허물며 어디론가 나아간다. 고요하고 근면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