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교육이라는 블랙홀

글쓴이 소개
김봉석

영화평론가이며 대중문화평론가. 가극 '금강' 대본, 시사 콩트 등을 쓰다가 '시네필', '씨네21', '한겨레' 등의 기자로 일했다. 이후 '한겨레'에 TV비평, '중앙일보'에 대중음악비평과 영화음악 칼럼, '채널 예스'에 만화 비평, '씨네21'에 문화비평 등 다양한 대중문화 분야의 글들을 썼다. 그밖에 영화사 기획 PD, 출판 기획 등의 경력도 있고 스릴러, 미스터리, 공포, SF 등 대중문학의 해설을 쓰고 책을 엮는 등의 활동도 하고 있다. 저서로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전방위 글쓰기'가 있고, 공저로 '클릭! 일본문화', '18금의 세계', '김기덕 야생, 혹은 속죄양', '일본문화의 힘', '월경하는 지식의 모험자들' 등이, 엮은 책으로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이 있다.
  • 내용
    2025년 수림북클럽 선정도서 도서리뷰
    지영 외, 『킬러 문항 킬러 킬러』
     

    교육이라는 블랙홀

    한국 사회에서 ‘교육’은 블랙홀과 같다. 대학 입시라는 단 하나의 목표에 아이들의 꿈과 적성, 휴식과 오락까지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사교육을 위해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가정 경제는 오로지 아이의 미래를 위해 희생한다. 심지어 부동산도 학군 중심으로 가치가 부여된다. 한국의 교육은 가능성을 발견하고 미래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선택받은 소수'를 가려내기 위한 잔혹한 경쟁 시스템이 되었다.
    경쟁에서 탈락하면 패배자라는 낙인을 스스로 받아들이도록 강요한다.  경쟁에 승리했다 해도 안심할 수 없다. 대학 졸업 후에도 많은 이들이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심각한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간다. 최근 화제였던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상층 10%에 속하는 대기업 부장 김낙수가 끊임없는 경쟁과 타인의 평가에만 목을 매다 결국 진정한 자신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승자’의 삶조차 얼마나 공허한지 잘 보여준다.

    교육은 아이를 둔 가족의 문제가 아니다. 입시를 위한 무한경쟁은 필연적으로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계층 간 교육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학업 성취와 진로를 결정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한국의 교육은 더 이상 공정한 기회의 사다리가 아니라 격차를 대물림하는 도구로 변해버렸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민주 사회의 근간을 뒤흔드는 심각한 문제다.
    작년에 시끄러웠던 ‘킬러 문항’ 문제를 되짚어보자. '킬러 문항'은 학교 수업만으로는 풀기 힘들고, 사교육 학원에서 특정한 스킬이나 해법을 배워야 겨우 풀 수 있는 문제를 말한다. 공교육 테두리 안에서만 공부한 학생이 풀기 힘든 문제다. 그동안 대학수학능력시험에 ‘킬러 문항’이 반복적으로 나왔고, 이를 대비하기 위해 학생들은이른바 ‘족집게 강사’를 찾아다녀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수능을 약 150일 앞둔 시점에서 ‘이권 카르텔’이 있다며 ‘공교육에서 다루지 않는 부분의 문제를 수능에서 출제하지 말라’고 했다. 교육부는 대학 입시 담당 국장을 경질하고, 출제 기관을 감사하며, 당장 다가오는 수능부터 ‘킬러 문항’을 없애겠다고 발표했다. 그 후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표제작인 장강명의 <킬러 문항 킬러 킬러>는 이 혼란의 시기가 배경이다. 집중력을 극적으로 높여주는 약을 구한 부모와 그것을 거부하는 학생의 이야기다. 정부가 ‘킬러 문항’을 없앤다고 하자, 학원장과 입시 컨설턴트들은 재빨리 새로운 전략을 내놓는다. 그들은 정부가 킬러 문항을 죽였다며 ‘킬러 문항 킬러’라고 불렀고, 정부의 정책을 무력화하는 방법을 아는 자신들이 ‘킬러 문항 킬러 킬러’라고 말한다. 하지만 누구도 미래를 알지 못한다. 정말로 킬러 문항이 사라질지, 사라진 수능은 어떤 모습일지 아무도 확신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잘 나가는 인기 교수인 아버지는 소년에게 ‘차세대 집중력 강화제’를 권한다. 교육에 몸을 담고 있는 아버지가, 이건 불법이 아니라 ‘최소한의 방어수단’이며 ‘일종의 저항권’이라고 주장한다. ‘위선자가 되어야 하는 순간을 잘 파악하는 사람이 사회 지도층 인사가 된다. 규정을 다 지키며 사는 사람은 경쟁에서 점점 밀려나 나중에는 아예 게임에 끼질 못하게 돼.’ 말로, 논리로 부모를 이길 수 없었던 소년은 약을 먹는 척하며 곤란한 상황을 벗어난다. 그리고 생각한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정부를 속이고, 자신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속이는 기만의 연쇄’에 대해서. 기만의 시작과 끝은 과연 어디이고, 자신이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른다. 소년도 모르고, 부모도 모르고, 아마 정부도 모를 것이다.

    <킬러 문항 킬러 킬러>을 기획한 장강명 작가는 말한다. 참여한 열네 명의 작가는 ‘한국의 교육 현실이 슬프고 괴롭고 기괴하다는 사실’에 동의하지만, 원인과 해답에 대해서는 모두 달랐다고. 그럴 수밖에 없다. 수십 년간 쌓여온 문제의 원인도, 해결도 결코 단일할 수 없다. 그래서 각자의 시선으로 지금의 교육 현실을 정면에서 보는 소설을 각자 쓴 것이다. 작가들이 보고 쓴 것을 다시 독자가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본 것을 같이 봐 주시고, 함께 괴로워해주십시오’라고 장강명 작가는 말한다.

    <킬러 문항 킬러 킬러>의 14편 소설은 부모와 학생의 시선에서, 현재의 학교와 교육을 다층적으로 보여준다. 미래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다가 갑자기 부모의 권유로 기숙학원에 들어가 검정고시를 보기 위해 자퇴를 하려는 학생이 있고(이기호의 <학교를 사랑합니다: 자퇴 전날>), 음악을 하고 싶다는 꿈을 말하자 그래도 서울대학교에 들어가면 더 좋은 길이 열린다고 말하는 부모(정진영의 <덜 싸우고 덜 상처받는 전략>)와 대안학교를 보냈던 아이를 어떻게든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사교육에 몰두하는 부모(주원규의 <한 바퀴만 더>)도 있다. 아이에게 좋은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믿으면서, 그렇기에 사교육의 힘을 빌려 ‘최후의 승자’가 되기를 바라는 모순된 생각을 가진 이도 있다(이서수의 <구슬에 비치는>). 사교육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좋은 대학을 못 간다고 믿는 부모들의 세계에서, 아이들은 확신을 가질 수 없다.

    ‘내 생각과 느낌으로 푸는 것이 아니라 출제자의 의도를 추측하고, 일반적인 답을 찾는’<그날 아침 나는 왜 만 원짜리들 앞에 서 있었는가>, 정아은) 교육은 과연 올바른 것일까? 나의 주관과 판단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규칙에만 따라가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있을까? ‘서진은 사춘기라서 쓸데없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인생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아졌다. 공부와 상관없고 해답이나 정답이 없어 보이는 것들에 대해 좀 더 알고 싶고 얘기하고 싶어졌다. 그런데 학교나 학원 모두 그런 것에 대해서는 가르쳐주지 않았다.’(서유미의 <우리들의 방과 후>)

    <킬러 문항 킬러 킬러>는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독자에게 ‘정답 없음’을 분명히 알리며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출제자의 의도에 복종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인생은 정해진 규칙과 정답이 없는데, 왜 교육은 하나의 ‘정답’만을 강요하는 것일까. 어쩌면 한국 사회가 하나의 길만을 제시하고, 모두 ‘정답’만을 따르면서 살아가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닐까? <킬러 문항 킬러 킬러> 속 소설들의 부모는 모두 아이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미래가 행복하기를 원한다. 그렇기에 ‘최후의 승자’가 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들 역시 알고 있다. 공정하게 규칙을 따르는 것만으로 승자가 될 수 없음을.
    그렇다면 ‘기만의 연쇄’를 끊어야 한다. 누가? 라는 질문은 무의미하다. 거창하게 무엇인가를 바꾸자는 구호나 주장이 아니라, 먼저 부모와 학생, 교사와 사회 구성원 모두가 지금의 교육 현실이 심각하게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변화는 언제나 한 개인의 결단으로 시작하고, 점차 퍼져나가면서 일어난다. 잘못을 알면서도, 일단 나는 승자가 되어야 한다고 고집한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우리의 아이들은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또 다른 김부장의 길을 걷게 될 것인가, 아니면 교육이라는 블랙홀 밖으로 나아가 자신만의 가치를 발견하는 길을 찾게 될 것인가. 모르겠다. 다만 <킬러 문항 킬러 킬러>가 보여주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직면하는 것, 바로 그것에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