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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수림북클럽 선정도서
김혜나 『깊은숨』리뷰
깊은숨 - 숨을 토해내는, 혹은 토해내지 못하는 여자들의 이야기
처음 김혜나 작가의 소설집 <깊은숨>을 봤을 때, 나는 습관적으로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후루룩 넘기며 여러 편의 단편 중에서 어떤 단편의 제목이 “깊은숨”인지 찾으려 했다. 그간 단편집을 읽었던 많지 않은 경험에 의지해 책의 제목으로 선정한 같은 제목의 단편이 있을 거라고 미리 지레짐작한 것이다. 그런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서 이 책에 수록된 6편의 단편 중 어느 것에도 깊은 숨, 이란 제목은 없었다. 그렇다면... 작품 속 어딘가에 이 단어가 있거나 책 표지만 봐서는 알 수 없는 주제어가 책 속에 있겠구나, 나는 다시 짐작해야 했다.
결국 문제의 단어는 두 번째 단편인 <가만히 바라보면>에 나왔다. 의도치 않게 나 혼자 숨바꼭질을 한 기분을 느끼며 책을 읽다가 마침내 술래를 찾은 것 같은 기쁨에 빙그레 웃었는데. 온라인 독서 모임에서 이 제목에 대한 독자들의 다양한 감상을 읽고 있자니, 다들 나처럼 제목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구나, 싶어 반가웠다. 그중에서도 깊은 숨이 깊은 숲으로 이어지고 그 깊은 숲이 검은 숲까지 확장되는 독자들의 사연이 흥미롭기도 했다. 나무와 숲을 좋아하는 나로선 공감이 가는 상상력의 확장이라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한 권의 책을 여럿이서 같이 읽고 각자의 생각과 느낌과 여운을 나누다 보면 이렇게 즐거운 부산물이 생기는구나, 싶어 독서 모임의 또 다른 순기능을 발견하기도 했다.
제목이 왜 “깊은숨”인가, 에 대한 의문은 두 번째 단편을 읽으며 대부분 풀렸지만, 실은 첫 단편인 <오지 않은 미래>부터 마지막 단편인 <코너 스툴>에 이르기까지 이 화두가 각 단편의 주인공에게 짙은 그림자처럼 스며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보면 각 단편의 주인공이 다 다르면서 같은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물론, 이들은 나이도 다르고, 직업도 다르고, 사는 곳도 다르고, 품은 이야기도 다르다. 그런데도 소설을 하나하나 읽다 보면 인물들이 하나씩 중첩되는 것이 마치 마트료시카의 인형들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첫 번째 단편의 주인공인 동화 작가 여경은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헝가리로 떠난다. 글을 쓰면서 쉴 때는 부다페스트의 아름다운 야경을 보며 쉴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코로나 팬데믹의 창궐로 여지없이 무너지고. 바이러스를 퍼뜨린 동양인이라는 편견과 혐오로 인해 외출마저 자유롭지 않은 상황에 갇힌 여경. 그녀는 전통주 교육기관에서 만난 민서의 남자친구인 진수를 부다페스트에서 만나 작은 도움을 받게 된다. 이곳이 아닌 저곳에서의 만남. 낯설고 아름다우며 일상의 환멸이 깃들지 않은 곳에서 모처럼 맛본 짧은 환희의 순간들.
하지만 고국에서 다시 만난 진수와 민서 사이에서 여경은 연신 답답한 숨을 토해내는 것처럼 보인다. 부다페스트에 있을 때는 다른 이유로 답답한 마음을 탁주를 만들며 토해낼 수 있었지만, “통제할 수 없는 드라마 속으로는 나아가고 싶지 않은” 여경은 “탁주에 더 이상 효모균이 증식하지 못하도록 열처리를 하듯 그들과의 관계를 그만 끊어내고” 싶어 한다. 감은 두 눈에서 떠오르는 빛의 잔영이 언젠가는 사라지리라는 사실을 아는 여경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한 마지막 문장은 미묘한 썸이자 세 사람의 갈등 관계를 근사하게 마무리하면서 동시에 여운을 남겼다.
두 번째로 <가만히 바라보면>은 이 소설집의 제목이 나온 장이기도 하지만, 요가와 호흡에 관한 가장 실용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가 강사로 일하며 직업적으로 무리한 요구에 응하다 결국 허리를 다쳐서 파타야까지 흘러간 나는 거기서 트렌스젠더인 잠을 만나 요가와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여기서 등장한 태국인인 잠의 이름이 무척 흥미로웠는데. 나만 그렇게 느낀 건 아니어서 그믐 독서 모임에 참여한 독자들도 “잠”이라는 이름에 대해 느낀 다양한 인상들을 올려줘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잠”이라는 이름에서 포근함, 나른함, 깊음, 혼곤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며 이 단편을 읽었다.
“요가는 타인을 따라가는 길이 아니야. 지금 너보다 나은 사람처럼 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바로 너 자신이 되려고 하는 거야. 그게 바로 네가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나는 묘기와 같은 현란한 요가 동작을 배워서 무대에 올라 주목받고 싶어 하는 잠에게 말한다. 하루빨리 무대의 중심에 서서 빛나고 싶은 잠에게 나의 말은 별 효과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나의 갑작스러운 병원행을 계기로 잠은 자신이 정말 원했던 게 뭔지 깨닫게 되고. 요가를 가르쳐준 나에게 와추 테파리를 선물해 준다. 나는 그를 끌어안고, 그는 나를 보듬어주며, 둘이 같이 오래 오래 그곳에서 흐르는 마지막 장면이 사무치게 좋았다. 숨을 오래오래 참은 두 사람이 마침내 서로를 보드랍게 끌어안은 채 깊은 숨을 토해내는 느낌이랄까. 읽는 나까지 그 따뜻한 싸매 비치의 바닷물 속에서 해방감을 느끼게 하는 결말이었다.
한편 <아버지가 없는 나라>와 <모니카>는 서로 이어진 이야기로 어렸을 때 한국에서 버려졌다가 외국으로 입양된 입양아 아진에 관한 이야기와 페미니스트인 엄마 덕분에 혹은 때문에 정자를 기증받아 태어난 한아의 이야기, 그리고 한아를 낳은 엄마 제니와 엄마의 연인인 모니카, 이렇게 네 여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들은 나이, 국적, 살아온 환경, 직업, 사고방식이 모두 다르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인생에서 무엇을 원하는지를 치열하게 질문하고 답을 찾아간다. 그 과정에서 사랑하는 이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거나 받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간다. 그래서 애틋하고 그래서 안타까울 때가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안도할 수 있었던 건 모두 피를 쏟는 듯한 힘겨운 과정을 거쳐, 마치 깊은 숨을 토해내서 머릿속이 맑아지고 시야가 훤해지는 것처럼, 자기만의 또렷하고 명징한 결론을 내고 계속 생을 이어간다는 것이다.
자신을 거듭 버린 친부에게 휘둘리지 않은 채 자신의 진짜 정체성이 뭘지 고민하며 용기를 내 친모까지 만난 아진이 파킨슨병에 걸려 눈빛으로만 자신을 바라보는 엄마를 보며 “나는 그저 존재할 뿐이라고, 내가 찾아야 할 존재는 오직 나 자신뿐이라는 진실”이라는 말에 등을 두들겨 주고 싶었다. 마찬가지로 어렸을 적에 자신을 조건 없이 사랑해 주면서도 끊임없이 일말의 불안감을 안겨주던 모니카가 마침내 자기를 잠깐이나마 버렸던 충격과 아픔과 의문을 평생 품고 있던 한아가 결국 모니카에게 보내려던 메시지를 삭제하는 장면 역시 좋았다. 어떤 의문은 굳이 풀려 하지 않아도 내 속에서 충분히 여물면 저절로 사라지는 편이 나을 때도 있으니까.
<모니카>라는 제목의 단편은 한아의 엄마 제니의 시점에서 모니카와 보냈던 시절을 회상하는 내용이다. 다양한 성적 취향을 존중하는 듯 보이는 미국에서 레즈비언으로서 겪은 차별에 대한 엄마와 모니카의 대화는 이 소설의 백미라고 생각한다. 노골적으로 차별하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척하면서 돌아서서 은근히 차별하는 위선적인 사람들을 대하는 자세는 어때야 하는 걸까. 과연 2025년의 한국은 이런 성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담론을 아무렇지 않게 옆집 아줌마와 나눌 수 있는 공간일까? 아직은 그런 토론이 안전하지 않다고 느껴질 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차선은 이런 진실을 조용히 하지만 강력하게 설파하는 <깊은숨> 같은 소설을 열심히 읽고 이야기를 나눠보는 게 아닐까.
마지막으로 나온 <비터스윗>, <레드벨벳>, <코너스툴>은 소통에 대한 갈망과 그럼에도 소통하지 못하는 고통을 토로하는 작품으로 읽혔다. 동시에 이 세 편의 작품 곳곳에 배어 있는 불길한 폭력의 기운에 때로는 읽으면서 순간순간 전율하며 섬찟하기도 했다. 비터스윗에서 주인공인 내가 남자친구 준과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의무적인 섹스, 좋아하는 진 언니의 아들 제이슨의 폭력적인 버릇없음. 급기야, <레드벨벳>에서는 영어 강사 해럴드의 딸인 어린 에마가 나의 소중한 책을 갈기갈기 찢고 또래 아이를 때리는 장면이 나오고, 나는 그런 에마를 때리려다 멈춘다. 그런 나 역시 동거하는 남자친구에게 맞으면서도 그걸 견디려는 자신이 무서워진다. 마지막 단편인 <코너스툴>에서는 그저 문학을 사랑하는 서점 주인과 영혼의 교류를 하고 싶었을 뿐인 소설가 주인공이 서점 주인 아내에게 거친 욕설을 들으며 오해받는다. 그러나 나는 해명하지 못한다.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두려웠기 때문에. 그렇게 긴 시간 주인공의 마음에 갇혀 있던 진실은 서점 주인 박호산의 딸 예지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밝혀진다. 물론 그 편지가 그 딸에게 가닿았을까, 라는 의문은 차치하고라도.
요즘 나는 의식적으로 깊은숨을 쉬려고 애쓰고 있다. 몸과 정신의 일체성, 때로는, 아니 자주 몸이 마음을 앞서고, 몸이 마음을 지배하며, 몸이 전부일 때가 있다는 진실을 이제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런 몸에 가장 좋은 건 깊은숨을 쉬며 순간을 알아차리는 거라고 내가 좋아하는 티벳 스님이 말씀하셨다. 이 소설 <깊은숨>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들이 모두, 비로소, 마침내 자유롭게 깊은숨을 쉴 수 있을 때 그녀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도 평화가 찾아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독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이 소설을 읽고 같이 깊은숨을 쉬려고 노력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