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2025년 수림뉴웨이브 '결: 예술가의 시간'
이나래 〈여정〉 공연 리뷰
여정의 시작: 판소리 기반 창작에 관하여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망, 그것은 두려움을 동반하면서도 묘한 쾌감을 선사하는 감정일 것이다. 예술가가 작업을 통해 ‘나’를 드러내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이다. ‘나’를 경유하지 않고는 ‘나의 예술’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로부터 시작하는 예술은 예술가가 반드시 거치는 자연스러운 여정이며, 처음의 ‘망설임’을 넘고 나면 이후로는 확장되는 자기 세계를 꾸준히 선보일 수 있게 된다. 물론, 이러한 자기-기획과 발표는 용기를 담보로 하며 얼마간의 창피함, 그리고 성장 서사를 쓰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판소리는 전승되는 레퍼토리를 오랜 기간 연마하는 장르다. 이 학습에는 끝이 없다. 판소리에는 끊임없이 연마해야 하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마침내 정복할 수 없는 ‘경지’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십수 년간 전통 소리 레퍼토리를 학습해 온 소리꾼이 자기 이야기를 하는 ‘창작자’로의 전환은 쉽지 않다. 2000년대 이후, 대중음악이나 전자음악가와의 협업을 통한 소리꾼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긴 했으나, 그 음악 안에서 소리꾼은 ‘보컬’ 역할에 머물렀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소리꾼이 창작자로의 정체성을 가지는 문제는 여전한 과제인 것이다.
소리꾼이 창작자로 서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 경향으로 나뉜다. 하나는 창작 판소리 형식이고, 다른 하나는 대중음악 문법을 활용해 음악을 만드는 방식이다. 두 방식 모두 협업 구조를 띠지만, 최근에는 소리꾼이 직접 DAW를 다루며 작곡과 프로듀싱까지 수행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는 ‘작곡’의 영역이 작곡가를 넘어 연주자로 확장되는 현재 전통음악계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오늘의 공연 <여정>은 이나래가 가진 다양한 음악 경력을 보여주듯, 그의 음악 여정과 동시에 그간 겪어 온 내면의 부딪침과 성찰을 담았다. 그는 작년 1월에 발매한 개인 정규앨범 <지금 어디> 수록곡과 전통 판소리 <흥보가>, 그리고 수림뉴웨이브를 위해 만든 신곡 <집>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구성했다. 공연은 2025년 10월 23일 19시 반에 김희수아트센터에서 약 한 시간 정도 진행되었다.
공연은 이나래가 다양한 단체에서 활동하며 얻은 음악적 영향을 가늠할 수 있는 장이었다. 전통 소리의 창법들을 활용해 ‘집’을 짓고 싶었다는 첫 곡 <집>은 이나래의 탄탄하고 다양한 목구성을 들을 수 있는 곡이었다. 전자음악 비트 위에 얹은 범패, 가곡, 민요 등 다양한 창법을 자유롭게 구사하는 그의 능력이 단연 돋보였다. 그러나 전통 소리의 ‘구음’이 가진 전형성을 피해 가지는 못했다. 각각의 소리가 하나의 ‘방’이라면, 그 소리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가사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구음’은 소리꾼이 활용하기 좋은 요소 중 하나지만, 그만큼 가진 힘이 강하고 전형적인 선율이 재현될 가능성이 높아 구음을 쓰고자 할 때는 신중한 선택이 필요하다.
이어진 전통 판소리 <흥보가>는 소리꾼 이나래의 기반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특히 동편제 강도근 바디의 <박 타는 대목>은 평소 듣던 소리와 달리 흥보와 흥보마누라의 대화가 담겨 있어 더욱 흥미로웠다. 결혼을 한 후 이 대목을 다른 마음으로 부르게 됐다던 이나래의 말에 충분히 공감되었다. 다만, 판소리는 일고수이명창이라고 말할 만큼 고수의 역할이 중요한 장르이기에 다소 설익고 미숙한 고수의 연주가 아쉬움으로 남았다.
앞선 무대가 이나래의 기반과 역량을 확인하는 장면이었다면, 이후 이어진 무대는 ‘창작자 이나래’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어떤 음악적 언어로 자신을 구성하려 하는지 보여주는 영역이었다. 이 지점에서 공연은 단순한 레퍼토리의 나열을 넘어, 그의 음악적 방향과 정체성을 가늠하게 했다. 이나래가 직접 가사를 쓰고, 작·편곡과 프로듀싱에 참여한 앨범 <지금 어디>는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며, 대부분의 곡은 verse와 chorus, bridge로 이루어진 대중음악 형식으로 되어있었다. 총 6곡 중 <물에 들라>만 전통 판소리의 한 부분을 가져왔고, 나머지는 소리 창법을 활용해 부르는 창작곡이었다.
<물에 들라>는 <심청가>에서 심청이 물에 빠지는 대목 중 “북을 두리둥 둥 둥 둥” 하는 부분을 Hook으로 삼은 곡으로, 이날치 밴드의 <범 내려온다>의 음악 전략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판소리의 눈대목, 혹은 반복적으로 사용했을 때 흥미를 유발하는 대목을 가져와 새로운 곡을 만드는 방식은 여러 소리꾼 창작자를 통해 시도되고 있다. 이는 이날치 밴드의 성취를 적극적으로 취하는 방식으로 유효하나, 이미 유명해진 곡이 있는 만큼 그 성취를 따라잡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포스트-무엇으로 불리는 시도를 어떤 방식으로 전개해 나갈지, 소리꾼 창작자들의 고민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음악 창작에서 무엇을 말할 것인가 만큼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를 음악적으로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이다. 즉, 내용과 형식의 균형, 그리고 발화 방식이 음악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이어서 들려준 이나래의 곡들은 자기 고민을 드러내는 내밀하고 솔직한 이야기들이었지만, 음악 배치의 아쉬움으로 그 이야기가 잘 전달되지 않았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다. 그간 자신을 어렵게 한 감정과 고민을 모두 음악으로 쏟아낸 듯했다. 그러나 편곡 방식이 그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고, 음악 문법과 잘 섞이지 않는 창법 또한 음악을 어색하게 만들었다.
특히 이나래는 전통 소리 창법을 고수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이는 다소 고민이 필요한 지점으로 보인다. 이러한 선택은 음악이 대중음악과 전통음악 사이 어딘가, 애매한 위치에 머물게 만들기 때문이다. 오히려 과감하게 한쪽으로 밀고 나가는 선택이 좀 더 명확한 음악을 들려줄 수 있을지 모른다. 또한, 대중음악의 가사 전달 방식은 판소리와 다르다. 판소리는 하나의 이야기를 연창으로 들려주는 형태이지만, 대중음악은 압축된 이야기, 그리고 코러스(후렴)의 반복으로 메시지를 강화한다. 이나래의 음악은 분명 대중음악 문법 위에 존재하지만, 발화 방식은 판소리에 가까웠다. 이것이 그의 음악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큰 이유였다. 다시 공연된다면, 곡에 담긴 내밀한 이야기가 보다 선명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가사 배치와 편곡 방식의 재고가 필요해 보인다. 아울러, 첫 곡에서 다양한 창법을 구사했듯, 음악에 맞는 창법 연구 또한 필요하다. 소리꾼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전통 소리 창법을 고수할 필요는 없다. 무기가 많은 소리꾼이니 오히려 전통 소리 창법은 잠시 뒤로 미뤄두고, 다양한 장르의 창법을 흡수해 노래해 보면 좋겠다. 그렇다면,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다양한 무기를 가진 보컬리스트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기실, 소리꾼들은 이미 가진 능력이 많은 예술가이다. 굵직한 단체를 거치며 훈련된 이나래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어린 나이부터 훈련된 몸과 소리, 무대 위에서의 태도, 켜켜이 쌓인 경험들. 이 공연에서 가장 좋았던 건, 이나래의 자연스러운 무대매너였다. 덤덤하게 곡을 소개하고, 곡을 만들며 들었던 생각을 전하던 이나래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그가 지나온 무수한 시간의 음악 인생이 담겨 있는 듯했다.
어쩌면 이 공연은 이나래의 음악 여정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시작의 불완전함은 당연하며, 바로 이 지점에서 공연의 의미가 생긴다. 이나래를 포함한 전통 소리 기반의 창작자들을 무대에서 더 자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들이 자신의 음악을 통해 전해줄 이야기가 자못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