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고래의 숨은 바다보다 깊다

글쓴이 소개
이건명
  • 내용

    수림아트랩 재창작지원 2023
    김초롱 〈사방으로 열린 문〉공연 평론

     



    개구쟁이 서넛이 물가에 둘러 서 있다. ‘하나, 둘, 셋!’을 외치며 있는 힘껏 숨을 들이마신 채 물 속에 얼굴을 파묻는다. 누가 숨을 오래 참는지 겨루는 ‘숨 참기 놀이’다. 물속에 비치는 아이들의 머리카락은 마치 해파리처럼 일렁이며 춤을 춘다. 처음에는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1분이 채 되지 않아 ‘어푸~!’하는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물을 튀기며 하나 둘 씩 고개를 쳐든다. 시간이 흐르고, 좀처럼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 마지막 친구를 바라보는 눈빛이 불안해질 즘,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밖으로 나온 아이는 의기양양하게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린다. 희희덕 거리며 잠시 숨을 고른 아이들은 다시 승부를 겨루기 위해 작은 몸집을 잔뜩 웅크린 채 자세를 잡는다.

     

    <사방으로 열린 문>은 제목처럼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개구쟁이 아이의 모습을 상상하게 해주었다. 특히 재기발랄한 연주력을 보여준 김초롱에게서는 어린아이 특유의 얕지만 리드미컬한 ‘숨’이 느껴졌다. 어린아이의 숨은 정직하다. 흥미로운 일 앞에서는 하염없이 숨이 올라와 금방이라도 춤을 출 것처럼 움찔거리는가 하면, 무언가에 푹 빠져 있을 때에는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숨죽여 집중한다. 언제 그랬냐는 듯 쌔근쌔근 잠이든 아이의 옆에 누워 얼굴을 맞대고 있노라면, 딱 그만큼의 숨결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긴 설명이 필요 없다는 듯 망설임 없이 시작한 첫 곡 ‘사방문’은 본격적인 놀이의 시작에 앞서 다양한 장난감을 소개하듯 소리를 하나씩 늘어놓았다. 꽹과리, 징, 박으로 이어지는 각각의 소리들은 루프스테이션(Loop Station)을 통해 쌓이고 반복되며 미리 녹음해둔 미디 사운드와 함께 글로켄슈필(실로폰의 일종)의 청량감을 극대화시켰다. 이어서 철현금과 장구로 이어지며 절정을 이루는 선율과 장단은 <사방으로 열린 문>의 주제를 대변하기에 충분했다.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첫 곡에 이어, 이번 재창작 지원에 초연된 ‘Clap & Play’가 이어졌다. 이 곡은 김초롱이 12년 째 활동해온 <국악그룹 고래야>의 ‘박수가락’을 연상시켰다. 채 무르익지 않은 분위기 때문인지 관객들이 바로 박수로 참여하기엔 어색함이 있었지만, 연주자를 응원하기 위해 모인 관객들 덕분에 어렵지 않게 호응이 이뤄졌다. 또 이후에 연주될 곡들을 위해 감상자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는 역할로써도 크게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첫 문을 열고 들어와 본격적인 다음 문으로 가기 위해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이었다.

     

    김초롱은 이번 수림문화재단의 지원을 계기로 반주악기로서의 전통타악기의 대한 한계를 넘어 음악을 이끌어가는 역할의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 음색과 선율적 요소에 중점을 두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런지 실제 연주에 있어서도 형식에 얽매이기보다 곡마다의 표현에 충실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루프스테이션을 쓰는 것 또한 전통음악에 있어서 더 이상 특별한 일은 아니기에 새롭지는 않았지만 덕분에 창작자가 중점을 둔 ‘소리’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가장 크게 신경 쓰였던 부분이 있다면 현장에서의 순수한 악기 소리와 기계를 거쳐 녹음되어 나온 가공된 소리, 그리고 사전에 미디 작업을 통해 미리 만들어둔 소리 사이의 이질감이었다. 이는 소리 자체의 ‘오리지널리티’를 말하는 것이 아닌, 소리가 처음 생성된 맥락을 지운 채 현재의 재료로 재사용해 굴절된 현실의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모든 곡들이 단순한 ‘선율 쌓기 놀이’에 불과한 소품의 수준이 아니었기에 작품의 구조와 논리에 있어서 한번 쯤 의미를 되짚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미 창작자도 이에 대한 고민이 많았을 것 같았다.

     

    이번 공연에서 상징적으로 여겨지는 부분이 있다면 악기의 구성에 있다. 두 번째 곡 ‘Clap & Play’ 다음으로 물 흐르듯 이어진 세 곡, ‘쇠와 아쟁’, ‘도원결의’, ‘바람 2021’은 각각 대아쟁과 생황 그리고 양금과의 협업을 통해 창작된 곡이다. 김초롱은 이에 대해 자신과(혹은 타악과)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은 악기로 구성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연의 의도와 목적에 비추어 본다면 어쩌면 그 이상의 의미를 충분히 부여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세 악기 또한 반주의 역할 정도로만 쓰이며 크게 주목 받지 못한 대표적인 악기이기 때문이다. 근래에 와서 양금과 생황은 두드러지게 활용되고 있지만, 대아쟁의 경우 음역과 주법의 한계로 인해 첼로 또는 콘트라베이스가 역할을 대신 할 정도이니, 궁중음악을 제외하고는 그 역할이 거의 사라져 간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 공연에서는 각 악기들의 음악적 존재감이 명확했으며, 음색과 선율적 요소에 방점을 찍은 취지에 맞게 동등한 위치에서 제 역할을 감당했다. 이는 마치 필요 없는 악기는 없으며, 기능적 한계가 아닌 그만의 고유한 매력으로 얼마든지 예술적 가능성을 기대 할 수 있다고 말하는 듯 했다.

     

    대아쟁과 생황, 양금 연주자의 등퇴장까지 하나의 무대 진행으로 자연스럽게 녹여낸 세 곡이 끝나고, 김초롱의 독무대가 이어졌다. 장구 독주 ‘사이’와 철현금 독주 ‘붉은 하늘’ 그리고 이번 재창작지원 공연에서 초연된 ‘일렁이는’을 끝으로 타이틀곡인 ‘사방문’을 전 출연진이 함께 연주하는 곡 ‘사방문, 다시’로 모든 공연의 문을 닫았다. 연주력과 구성력, 예술적 감각과 완성도 등을 크게 논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고민하고 단련한 흔적이 역력했다. 무엇보다 오랜 시간 팀 활동을 통해 다져진 기량과 자연스럽게 몸에 밴 앙상블의 호흡은 2020년 <문밖으로>를 시작으로 솔리스트로서의 활동을 개척해 나가기 위해 충분한 준비가 되었음을 보여주었다. 김초롱의 연주에서는 숨기거나 꾸며내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의 노력의 결과를 보여주듯 시작과 동일하게 망설임 없는 연주를 보여준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예술가로서의 다음 행보를 상상하게 해주었다.

     

    다음 작품으로 계획하고 있는 공연의 제목이 <내 안의 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내심 기뻤다. 이번 과정에서 아쉬운 점들을 보완하고 발전하기 위한 행보라는 생각에 무대에서 느낀 대로 똑똑한 예술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의 처음에 ‘숨’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만큼 중요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숨은 호흡이다. 들이마시고 내쉬는 호흡의 연속은 흐름을 만들고 생명을 지속시킨다. 호흡은 무의식중에 몸에 밴다. 가깝게는 지금은 컨디션과 감정을 보여주고, 멀게는 건강상태나 해온 일의 성격을 느끼게 한다. 일상의 호흡과 예술적 호흡의 공통점이라면, 지문처럼 남아 현재와 과거를 이야기해준다는 점일 것이다. 글을 시작하며 김초롱의 호흡은 어린아이처럼 얕으며 리드미컬하다고 말했다. ‘얕다’는 말이 ‘미숙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보다는 ‘배려심 많은’이라는 뜻을 담았다. 주변을 살피고 타인과 장단을 맞추는 사람의 호흡은 얕을 수밖에 없다. 자신의 내면을 향한 깊은 호흡을 나눠 타인에게 쓰기 때문이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공동체에서 호흡을 나눠왔다면, 그 공력은 어디에서도 얻기 힘들만큼 특별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 작품인 <내 안의 문>이 기대가 된다. 보다 자신에게 집중 한 호흡은 과연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더 여유 있고, 깊고, 느리게. 바쁘게 주변을 둘러보는 것에서 잠잠히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들은 분명 내면을 성숙하게 하며, 예술적 수준과 완성도를 높여줄 것이다.

     

    인터뷰 차 한번 밖에 만나지 못했지만, 눈빛과 음성에서 느껴지는 열심과 진심은 그동안 <고래야>의 창단 멤버로써 20대를 모두 쏟아놓은 열정을 충분히 가늠하게 해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홀로 걷는 길 위에서도 <고래야>를 애써 지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자체로 장점이 많기 때문이다. 보통 ‘홀로서기’를 할 때면 이전의 자신과 전혀 다른 모습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때로는 ‘자연스러움’을 저해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오랜 동안 젖어온 세월들은 이미 부정 할 수 없는 나의 모습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이상의 의미와 맥락이 필요하다. 팀과 솔리스트의 차이라면, 팀은 구성원 개인이 팀의 정체성에 얼마든지 묻혀 갈 수 있는 것에 비해, 솔리스트는 결코 숨을 곳이 없다는 데 있다. 그래서 솔리스트는 자신만의 나름의 철학이 정립되어야 한다. 관객은 자신이 사랑하는 예술가의 철학을 ‘말과 글’을 통해 만난다. 어쩌면 작품을 통해 만나는 것보다 더 자주 접하는 방식일 것이다. 하지만 ‘말과 글’은 많은 예술가들이 간과하기 쉽다. 자신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체의 구성원이나 기능적인 연주자로서의 역할만 감당하면 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이름을 건 솔리스트로 나아가려 한다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말과 글’을 다듬는 일 또한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말과 글’은 작품과 작품, 작품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중요한 ‘문’이다.

     

    얕은 물가에서 숨을 참느라 여념이 없던 아이들은 자라서 깊은 물로 나아간다. 그곳에서 자유롭게 헤엄을 치려면 깊은 숨이 필요하다. 세상을 향해 난 사방의 모든 문을 활짝 열고 이제 시작이라 말하는 김초롱에게도 꼭 필요 할 것이다. 평생을 바다에 살며 야무진 숨비소리를 내뱉는 해녀만큼, 드넓은 바다를 품고 사는 고래만큼 숨을 쉬게 될 즈음 얼마나 재미있고 멋진 작품을 만들어낼지 벌써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