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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림뉴웨이브 2026 - 추다혜의 <엇숨>
어떤 음악가의 이름을 들으면 그간의 작업을 통해 축적된 미감이나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에너지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경우가 있다. ‘자신만의 색깔’이라는 다소 진부한 표현으로 갈음할 수 있겠지만, 사실 이름만으로 기분 좋은 기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음악가는 그리 많지 않다. 추다혜는 뻔해 보이는 수식어가 얼마나 간단치 않은 성취인지 보여주는 음악가다. 그의 공연을 앞에 두고 추다혜라면 이런 음악을 선보일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앞서 언급했듯 음악가가 관객에게 특정한 기대를 준다는 건 자신의 세계가 어느 정도 갖춰졌다는 의미다. 하지만 관객들이 그 음악가를 찾는 꽤 명확한 기준이 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이러한 기대는 때때로 음악가를 복잡한 고민으로 이끌기도 한다. 예컨대 기존의 것을 유지할 때 이미 만들어진 스타일을 안전하게 반복한다는 평이 따를 수도, 자신의 언어를 견고하게 세공한다고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반면, 새로운 변화를 시도할 땐 기존의 개성이 희석되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일 수도, 새로운 챕터가 열렸다는 평가로 이어질 수도 있다. 특정한 기대를 받는 음악가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양가적인 평가에 도전하며 자신을 갱신해야 하는 위치에 놓이곤 한다. 이러한 관점을 고수한 채 결과물만을 놓고 본다면, 추다혜의 <엇숨>은 기존의 것을 유지하는 쪽에 가까웠다. 이번 공연은 솔로 프로젝트에 초점을 맞춰 자신의 일대기를 압축적으로 전달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안전한 선택으로 읽혔다.
공연은 1부와 2부로 나누어 진행되었는데, 1부에선 서도민요 레퍼토리를 좌창 형식으로 선보였다. 무대 한가운데 홀로 앉은 추다혜는 공연을 여는 첫 곡으로 <수심가>를 선택했다. 반주를 완벽하게 걷어낸 덕분에 목소리 자체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지만 상당히 의외의 시도로 느껴지기도 했다. 원전이 명료한 음악을 날 것 그대로 부르면 공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되고 관객의 태도도 비교나 평가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공연의 도입에 목소리를 전면에 내세우는 선택을 한 이유는 아마도 자신의 이름을 내건 공연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제대로 힘주어 말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전통’에서 ‘창작’으로, ‘과거’에서 ‘현재’로 가는 선형적인 역사관, 즉 과거의 양식으로서 ‘전통’을 출발점에 두고 점진적으로 새로운 단계인 ‘창작’으로 나아가는 도식처럼 공연의 흐름이 읽히기도 했으나, 그보다는 추다혜가 가진 역량이 무엇인지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느껴졌다. <수심가>에 이어 스스로 반주를 하며 노래한 <초한가>나 이향하의 반주로 함께 한 <난봉가>도 사운드의 층위가 넓어지긴 했으나 비슷한 의도 아래 놓여있었다.
네 번째 곡인 <사자의 노래>부터 솔로 프로젝트로서 이정표가 될 만한 곡들이 등장했다. 특히 2020년도에 발매된 디지털 싱글을 차례로 선보였는데, 보통 전통 레퍼토리를 선보이고 자신의 창작곡을 선보일 때 급격한 단절이나 시차가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음악의 문법이 달라지고 보컬의 호흡이나 발성이 바뀌며 앞서 선보인 전통 레퍼토리와 창작곡 사이의 이렇다 할 맥락을 찾기 어려운 것이다. 미니멀한 실로폰 연주에 목소리의 질감을 극대화하는 <사자의 노래>는 두 영역의 적절한 브릿지 역할을 해주면서 그가 앞으로 선보일 음악의 지향을 예비한다. 동시대적인 편곡을 지향하면서 서도민요를 하는 자신에게 가장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가창을 고수하는 것이다.
기타리스트 이시문과 함께한 <몽금포>와 <싸름>은 원곡의 형식과 문법을 존중하면서도 원곡의 오리지널리티에 매몰되지 않는 곡들이었다. 두 곡 모두 원곡의 호흡이나 리듬을 중시하며 기타의 문법으로 적절하게 치환했다. <몽금포>에서 원곡의 3박 호흡을 그대로 살리는 부분이나 <싸름>의 도입에서 기타의 패턴으로 원곡의 리듬을 예비하는 모습만 보더라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곡들은 원곡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호흡을 해치지 않는 것에만 몰두하지 않는다. 곡에 대한 해석도 상당히 섬세하게 이루어지는데, 섣부르게 화성적 효과를 의도하지 않으며 곡에 새로운 분위기를 입혀 장면을 만들어 가는 영민함에서 이시문의 역량이 돋보이기도 했다. 또한 보컬과 기타가 함께 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구획하고 각자의 영역을 밀도 있게 채워가는 탁월함은 원곡의 아우라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음악을 또 다른 위치로 옮겨 놓는 듯 보였다.
이번 공연에서 <자진아리>는 기타와 거문고 조합이 아닌 기타와 베이스 조합으로 연주했다. <자진아리> 역시 원곡의 구조를 따라가면서 패턴의 반복, 패턴의 유기적인 결합과 변화로 캐치한 효과를 만들어 냈다. 원곡에 대한 존중, 그리고 모든 악기가 자신의 자리에서 해야 할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감각이 적절하게 빚어지며 노래 한 소절을 각인시키는 힘. 거기에 추다혜의 힘이 있지 않을까. 그렇게 만들어진 추다혜의 스타일은 모든 연주자가 함께 한 <축원경>에서 집약적으로 드러났다. 점차 사운드의 몸집을 키워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모든 것은 하나로 수렴된다는 듯.
일반적으로 성악을 전공한 보컬이 음악을 만드는 방식에는 일관된 경향이 있다. 자신이 가진 레퍼토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줄 협업자를 만나거나 끊임없이 협업자를 바꾸는 것이다. 국악이 다른 장르와 결합을 시도한 역사 이래로 많은 민요, 판소리 보컬이 선택해 온 방식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음악적 한계를 다른 사람의 음악적 역량으로 보완하거나 돌파하려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고, 그룹의 속에서 보컬의 역량이 무엇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종종 운 좋게 보컬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될 때도 있지만, 대개는 보컬의 세계가 견고해지거나 깊어지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보컬이 지닌 목소리의 질감만이 선명하게 남아 있을 뿐 음악의 근간이라 할 만한 것이 협업자에 따라 계속 바뀌거나 흔들리는 경우도 있다. 나는 이러한 문제에 꽤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왔는데, <엇숨>은 여러 걸출한 협업자들 사이에 그의 영역이 무엇인지, 그가 고수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세하게 알게 해주는 공연이었다.
음악의 기본이 되는 ‘숨’에 올해 수림뉴웨이브의 주제인 ‘엇’을 붙인 ‘엇숨’은 “정해진 호흡을 따르지 않고 비켜난 자리에서 발생하는 숨”이라는 의미로, 추다혜가 공연의 제목으로 새롭게 만든 단어다. 우리가 어긋남에 매혹되는 이유는 규격과 질서를 벗어났다는 쾌감뿐만 아니라 예상하지 못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추다혜의 음악이 매혹적인 이유가 예측을 벗어나는 풍경 때문이라면, 정직한 태도로 훌륭한 멤버들과 함께 차곡차곡 쌓아 올린 시간은 5년, 10년 뒤 어떤 풍경으로 이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