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림미술상 수상작가전 : 물질 접속사 마찰음
2024.11.22(금) - 2025.02.28 (금)
2024.11.22(금) - 2025.02.28 (금)
김희수아트센터 아트갤러리1 지도 바로가기
12-18시 (일요일, 공휴일 휴관)
수림문화재단
02-962-7911
🕯️물질
김명범 작가는 시대적 문화 양식과 감수성을 담지한 여러 사물을 작품의 소재로 삼아 서로 결합하거나 특정 상황을 연출한 형식의 작품을 만든다. 풍선, 돌, 눈송이, 박제 사슴 등 현상과 물질에 속하는 다종의 것이 반복해 등장한다는 특징이 있다. 개별적으로 분리해 보면 새삼스러운 것이 없지만 작품에 쓰일 때는 한결같이 사소함이나 익숙함이 탈각된 상태다. 이렇게 그의 작업이 비미술 재료(nonart material)인 대상에 가하는 조형적 개입, 무의식을 개방하는 은유적 표현 등, 물질 간의 낯선 관계를 극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은 데페이즈망(dépaysement) 전치(轉置), 전위법 등을 말한다. 본래는 ‘나라나 정든 고장을 떠나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 초현실주의에서는 어떤 물체를 본래 있던 곳에서 떼어내는 것을 가리킨다.) 을 환기한다. 그렇지만 그의 주된 관심이 물질 자체, 물질과 그와의 관계에 있다는 점은 미술 규범에 대한 도전이라든지, 내적 욕망이나 환상을 표현한 초현실주의와 구별된다. 작가는 그의 작업을 ‘대상이 가진 보편적 가치, 상징성, 관념, 물성, 형상에 주체적으로 개입한 시각적 실천’이라 정리하는데, 이를 통해 물질을 보는 작가의 주관(主觀)이 중시됨을 알 수 있다. 김명범은 마치 특정한 운율이나 감각을 위해 문법을 거스르며 시적 허용을 취하는 시인처럼, 혹은 무대 위 시공간이나 등장(인)물을 이리저리 소환하며 연극적 허용을 행사하는 연출가처럼 물질의 논리를 해제하는 자유를 즐기고 그것을 미술의 방법으로 삼는다.
🕯️접속사
결합한 물질은 이어진 듯하지만, 대조적으로 보이기도, 불화하기도 하며 관람자에게 서로 다른 각각의 성질을 좀 더 선명하게 인식하게 한다. 작가는 작품에 서사를 투영해 해석의 여지를 남기기보다는, 시각적으로 명료한, 함축적 결합으로서의 완결에 주력한다. 이는 그의 작업이 종종 시(詩)적이라는 문학적 수사를 받는 이유일 것이다. 확실히 그의 작업에는 한두 줄의 시구(詩句)로 언어화할 수 있을 법한 어떤 인상이, 구와 절을 이어주는 접속사처럼 맥락에 따라 순접, 역접, 병렬 같은 구조를 만드는 요소가 있다. 이를테면 공기나 바람 같은 매질에 닿아 작용하다가 서서히 소진되는 물질을 보여주는 영상처럼 사건의 흐름을 기록한 것도 있고(〈Birthday〉,
🕯️마찰음
합병을 위해 물질은 서로 조율한다. 부드럽게 섞이는 것이 아니라 마찰을 일으켜야만 결합이 이뤄진다. 엮은 흔적 없는 매끈한 작업은 고요하지만, 청감각이 강하게 느껴지는 작업이 많다. 먼저 나무나 뼈, 뿔을 깎고 연마하여 인공적인 붙임으로 만든 작업이 그렇다. 그런가 하면 작품이 안고 있는 잠재적인 위험도 있다. 작가가 자주 사용하는 풍선의 경우, 그것은 종종 스테인리스 스틸이라는 갑옷을 입곤 하지만, 우리의 상상 속에서 약간의 공기를 더하거나 뾰족한 것에 닿기만 해도 영락없이 빵하고 터져버린다. 전시에 포함된 세 점의 영상은 단단한 눈 뭉치와 불꽃의 상태를 응시케 하는데 소리가 없는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위태로운 불꽃이 작게 지글지글 타는 소리, 눈이 천천히 녹아 흙에 흡수되는 소리를 들은 것만 같은 익숙한 기청감이 있다. 또한 라켓이 되고 만 바이올린-바이올린이 된 라켓(〈Untitled〉
🕯️은유로서의 회전문
이번 전시는 지난 2007년부터 현재까지 김명범 작가가 다뤄온 물질의 생태적 변이 – 사물의 변신과 원형에 대한 개입, 흐르는 시간에 대한 역학적인 기록 – 등을 전체적으로 조망해 볼 수 있게 준비됐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중간 점검(인터미션)처럼 대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주요 전작과 미발표작, 신작을 선별해 선보이는 의미 있는 자리임으로 이제 1막을 마친 듯한 소회를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곳에 도달하기까지 쉬지 않고 꾸준히 작업을 하면서도 그에게는 자연이라는 거대 담론에서 빠져나와 스스로 중심을 찾고 원점으로 다시 돌아와야 했다는, 그가 작가로서의 시작점을 다시 점검할 수 있었던 시간이 있었다. 하여 전시장 초입에 있는 은유로서의 회전문은 그가 원점-제자리로 돌아온 이후에 축적한 작업의 아카이브로 들어가는 입구이자 되돌아 나오는 출구가 되어 관객을 들일 것이다. 전시 《물질 접속사 마찰음》은 조각과 설치, 영상 매체를 오가며 어떤 낯섦과 예민함을 돋아나게 할 수 있는지 살펴 온 김명범 작가의 작업 여정의 중간 어디쯤이다. 전시라는 이름으로 그어놓은 테두리가 그 시간을 충분히 탄력있게 잡아줄 수 있기를 바란다.